“농구가 아니었다면 서장훈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기사입력 2023.06.20. 오전 09:01 최종수정 2023.06.20. 오전 09:01
[김종수의 농구人터뷰(80)] '국보급 센터' 서장훈(하)
‘외국인 빅맨과 매치업이 가능했던 선수’, 현역 시절 서장훈(49‧207cm)에 대한 평가다. KBL 무대서 외국인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했을 때, 어쩌면 저 말 하나로 모든 설명은 다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레지 타운젠트(49‧198cm)는 센터치고 키는 크지않았지만 묵직한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 좋은 선수였다.
거기에 체형과 달리 아주 유연하고 기술적인 테크니션이었는데 다양한 포스트업 스킬에 더해 3점슛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타운젠트가 삼보(현 DB)시절 서장훈과 매치업된 경기를 보면 서로 못막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타운젠트의 유려한 피벗 플레이는 당시 외국인빅맨들 중에서도 단연 탑급이었다.
두터운 몸으로 상대를 툭툭 밀어내며 순간적으로 돌아서서 슬쩍 올려놓는 골밑슛은 전매특허였다. 서장훈 역시 여기에 거푸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공격시에는 또 달랐다. 장기인 턴 어라운드 페이드어웨이 슛으로 돌려주며 장군멍군을 반복했다. 별것 아닌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역대로 따져도 외국인빅맨을 일대일로 감당할 수 있는 선수는 서장훈 외에 하승진(38‧221.6cm) 정도 밖에 없었다.
그 외 일부 선수들도 떠오를 수 있겠지만 대다수는 잠시는 가능해도 경기내내 매치업되는 것도 사실상 쉽지않았다. 서장훈은 그 어려운 일을 시즌내내 커리어의 대다수에 걸쳐서 해냈다. 이른바 ‘서장훈 효과’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서장훈이 외국인선수를 온전히 맡아준다면 자팀의 외국인선수는 운신의 폭이 매우 넓어진다. 이는 상대 수비진에 엄청난 부담감을 줄 수 있고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해진다.
SK가 청주를 연고지로하고 있던 시절 첫 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최강 현대(현 KCC)를 챔피언결정전에서 무너뜨릴 수 있었던데에는 서장훈 효과가 컸다. 선수층도 얇고 경험도 짧았지만 서장훈이 있었기에 위력적인 베스트5를 구성할수있었고 단기전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현대는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조니 맥도웰, 로렌조 홀이라는 강력한 주전라인업을 통해 왕조를 이어가고자 했다.
워낙 개개인의 기량이나 내외곽 밸런스가 좋은지라 타팀들 입장에서 현대는 그야말로 통곡의 벽이었지만 SK는 달랐다. 그런 현대를 상대로 적극적인 미스매치 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었다. 물론 서장훈이 있기에 가능했다. 현대와의 경기에서 서장훈은 외국인선수 중에서도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던 홀을 일대일로 맡았다.
홀을 상대로는 서장훈도 쉽지않았지만 몸싸움 등에서 어느 정도 버티는게 가능했고 자신도 공격력으로 돌려줬던지라 나름 승부가 됐다. 상황이 그렇게되자 센터겸 파워포워드였던 재키 존스는 맥도웰을 수비했다. 맥도웰의 파워 플레이는 당시 리그를 지배하고있는 상황이었지만 존스처럼 자신보다 크고 기동력까지 갖춘 상대가 마음먹고 수비에 나서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서장훈과 존스가 현대 외국인선수 2명을 커버해줌으로서 SK는 외국인선수 한명이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최인선 감독은 수비에 능한 로데릭 하니발을 선발했는데 이는 현대 앞선을 무너뜨리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 됐다. 하니발은 신인 황성인의 부족한 리딩을 돕는 한편 상황에 따라 1~4번까지 전천후로 수비를 펼치며 구멍을 메우는 소방수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
특히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현대 공격의 시발점인 이상민을 전담수비하며 특유의 시스템 농구를 망가뜨리는 파괴자로 악명을 떨쳤다. 조상현 또한 수시로 단신 2번 조성원에게 포스트업을 치는 등 SK는 전방위로 미스매치를 활용했다. 역대 서장훈의 팀중에서 그를 가장 잘 활용하고 결과도 좋았던 시즌으로 꼽힌다.
◆ 서장훈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88경기 출전 평균 19.2득점, 7.6리바운드, 1.6어시스트, 0.5스틸 , 0.7블록슛
◆ 서장훈 챔피언결정전 통산기록 ☞ 통산 17경기 출전 평균 16.5득점, 7.5리바운드, 1.5어시스트, 0.4스틸 , 1.3블록슛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1999년 2월 7일 인천 대우전 = 44득점 / 3점슛 성공 ☞ 2009년 3월 8일 대구 오리온스전 = 5개 / 어시스트 ☞ 2009년 1월 25일 서울 SK전 = 7개 / 리바운드 ☞ 2002년 10월 27일 전주 KCC전 = 19개 / 블록슛 ☞ 2001년 2월 18일 창원 LG전 = 6개 / 스틸 ☞ 2006년 12월 24일 대구 오리온스전 = 4개
“이기적이다? 저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Q.본의아니게 팀을 자주 옮겨다녔어요. 그로인해 다루기 힘든 선수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여러팀을 오간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짚어보면 저도 할말은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SK와 4년 계약을 하고 충실히 기간을 채웠어요. 계약 종료 후에도 어지간하면 남고 싶었습니다. 데뷔팀이고 동료들과 함께 우승도 만들어냈고 애정도 상당했죠. 하지만 프로는 서로 조건이 안맞으면 함께 할 수 없는거잖아요. 삼성에서 제 가치를 인정해줬으니까 옮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5년 계약을 했고 역시 기간을 채웠습니다. 그뒤에는 아시다시피 여러팀을 오가게 됐고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말못할 사정도 있고 이런저런 일도 많았습니다. 한팀에서 프랜차이즈로 남을 수 있다면 충분히 멋진 일이죠. 하지만 지내다보니 뜻대로만 되지는 않더라고요. 프로선수라면 제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뛰는게 맞잖아요. 이팀보다 저팀에서 내 가치를 더 높게 봐주면 옮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한거죠. 단순히 돈 몇푼 더 받고 덜 받고가 아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고 보는게 맞을거에요. 프로 선수에게 연봉은 자존심이지만 꼭 돈만 보면서 팀을 옮겨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프랜차이즈에 대한 아쉬움은 살짝 있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고 내가 더 필요한 팀에서 뛰는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Q.KCC 시절 태업 논란이나 트레이드 요청 등으로 인해 실망한 팬들도 많았어요.
음…, 어렵네요. 저도 제 나름대로 사정도 있고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제가 갈등의 중심에 있었고 그로인해 팀 성적도 떨어지고 팬 분들이 눈살찌푸릴 언행도 분명 적지않게 했으니까요. 이것 뿐만이 아니에요. 가끔 어떤 분들이 특정한 과거 일을 언급하시면서 저에게 ‘그때 왜 그랬어?’하고 물어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솔직한 제 대답은 ‘저도 모르겠어요’입니다. 책임을 회피하자고 그러는게 아니에요.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꽤 달라져요. 20대 때의 저와 30대가 다르고 이제 50살에 들어선 저는 또 다르죠. 당시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의 저라면 조금 다르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혈기왕성한 예전의 제가 지금의 저와 같을 수 는 없는 것이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아닌가요? 아무리 신중하게 행동한다해도 젊은 시절의 제가 나이먹어서의 저보다 더 깊이있기는 쉽지않아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차이가 있을 수 있고요.
Q.궂은 일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어서 공격하는 플레이를 선호했어요. 그로인해 호불호도 갈렸고요.
그렇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국내 선수 기준으로 봤을 때 궂은 일이나 팀 플레이 잘하는 선수가 칭찬받고, 볼을 오래 가져가면서 공격 위주로 플레이를 하면 이기적이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하죠. 앞서도 얘기했다시피 평가는 제가 하는게 아닙니다. 저는 잘하는 것 위주로 열심히 뛰었을 뿐이고 이후의 평가는 팬 분들이 하시는 것이죠. 개인적인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운동을 하는 선수치고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나 위주로 팀이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선수가 있을까요? 혹여나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기에 슛을 자제한채 수비 위주로 하고 기타 등등 궂은 일에 더 집중하고 그러지 않을까요? 적어도 프로 무대를 밟은 선수들은 학창 시절에는 다들 본인 팀에서 한가닥씩 했을거에요. 그렇지만 프로에서는 그렇게해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다른 쪽으로 우회한 것이고요. 매경기 20득점 이상을 책임질 수 있으면 그 선수가 궂은 일 위주로 갈까요?
Q.그 정도 득점이 꾸준히 보장된다면 누가 시키지않아도 자연스럽게 에이스 자리를 차지할 듯 싶습니다.
맞아요. 그겁니다. 저 역시 다르지않아요. 학창 시절부터 중심에 서서 내가 팀을 이끌어가고 싶었고 프로에서도 그게 되니까 그렇게한거에요. 아무리 제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해도 실제 경기에서 득점을 그렇게 뽑아내지 않았으면 불가능했겠죠. 꼭 저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프로농구에서 외국인선수 제도가 만들어지는데 서장훈이라는 존재도 조금은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선수없이 뛰게되면 아무래도 제가 있는 팀이 많이 유리할테니까요. 저는 외국인선수 포함해서도 메인에 서고 싶었습니다. 여기는 한국리그잖아요. 그렇다면 국내선수가 주연이 되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어려운 길이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엄청 큰 뜻을 가지고있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냥 그렇게하는 플레이가 계속 통했고 저는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 득점력을 봉인하고 궂은 일 위주로 플레이했다고해서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요? 각자가 제일 잘하는 것으로 팀에 공헌하는 겁니다. 그게 프로라고 생각해요.
Q.확실히 국내 선수가 돋보이면 좋기는 하죠.
좋다 뿐이겠어요. 여기는 KBL입니다. 한국 리그라고요. 아쉽게도 현실은 외국인선수만 잘 뽑아도 팀이 확 달라져요. 지금 1명뛰는데도 그러는데 예전에는 2명씩 코트에 나섰다고요. 국내선수 전력이 다소 약해도 수준급 외국인선수 둘이 막 헤집고다니면 그냥 달라져요. 하지만 제가 방송에서 종종 썼던 말마따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죠. 국내선수가 펼치기 어려운 화려한 덩크 등 외국인선수 특유의 매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능가는 못해도 적어도 대등하게 가야 리그 발전도 더 따라올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현실은 팀내 1, 2번째 토종선수도 보조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죠. 팬들은 외국인선수가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보다 국내선수가 빛나는 것을 더 보고싶어할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후배들 마인드도 많이 바뀌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선수도 늘어가는 듯 싶고 아무쪼록 중심에 서는 토종 플레이어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인선수 잘 뽑아서 우승한다고 얼마나 기억하겠어요. 언젠가 챔피언결정전때 허재 선배가 머리에서 피까지 흘려가면서 투혼을 보인 끝에 준우승을 했음에도 MVP를 받은 적이 있어요. 당시 시리즈는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고있단 말이에요. 왜 그러겠어요. 국내선수가 외국인선수 이상가는 존재감으로 시리즈를 뒤흔들었던 이유가 커요. 프로농구의 인기가 더더욱 높아지기 위해서는 외국인선수에게 대등하게 맞서는 국내선수가 많아져야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기량차이가 어느 정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라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마인드라도 그렇게 가져가는게 좋지않을까 싶어요.
“왜 요키치처럼 플레이 안했냐고요?”
Q.함께 뛰어본 외국인선수 중에 인상깊었던 선수가 있을까요?
흐음…, 기량좋고 색깔 뚜렷했던 외국인선수가 한둘이 아니라서요. 질문듣기 무섭게 머릿 속으로 몇 명이 휙휙 지나가기는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는 참 개성있는 외국인선수가 많았어요. 최근 외국인선수들은 내 외곽을 오가며 스윙맨도 했다가 빅맨도 했다가 그런 케이스가 많더라고요. 어찌보면 세계적인 추세도 그러니까요. 하지만 예전에는 완전 클래식한 빅맨부터 단신이지만 외곽슛이 거의 없다시피한 돌파머신까지, 특정 부분에 특화된 외국인선수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격투기로 따지면 지금은 종합격투기지만 그때는 이종격투기의 성향이 강했다고 할까요.
Q.토탈 패키지하니까 SK에서 우승을 합작한 재키 존스가 생각납니다.
그렇죠. 존스는 지금 기준으로봐도 정말 다재다능했다고 기억합니다. 빅맨으로서 기본 플레이에 충실하면서도 3점슛도 꽤 정확했고 수비 리바운드 후 달리는 동료를 향해 길고 정확하게 던지는 아웃렛 패스가 정말 일품이었죠. 한손으로 투구하듯 던지는지라 당시에는 베이스볼 패스라고도 했어요. 저희 팀이 아주 빠른 팀이 아니었음에도 존스의 그같은 패스능력으로 인해 속공플레이를 꽤 많이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존스에 대해서는 오해하시는 팬분들도 조금 있을 듯 싶어요.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경기중에 격하게 화를 낸적이 있어요. 오버액션까지 더해졌는지라 당시 심판 분들은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셨죠. 거기에 한국을 떠날 때도 조금 좋지못하게 가버렸는지라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팀원으로서 같이 지내본 제가 본바로는 누구보다도 인성이 좋고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한팀이다는 것을 느끼게해준 친구에요.
Q.요새도 농구는 보시나요?
처음에 은퇴해서 한 1~2년 정도는 잘안봤어요. 왜냐하면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내가 없는데…, 내가 없는 코트를 보는게 낯설고 그랬어요. 당시 겨울에 코트가 아닌 집에있다는 사실이 허탈하고 공허하고 그랬습니다. 이전까지 그 시기를 그렇게 보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평생 한 것이 농구라서 그런지 슬며시 궁금해지더라고요. 사실 안볼 수가 없었던거죠. 요새는 스케줄 때문에 생방송은 보기 쉽지않지만 집에 들어와서 재방송 등은 챙겨보려고 노력해요. 농구선수로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에게 농구는 늘 새롭고 흥미로운 세상입니다. 이건 변하지않더라고요.
Q.올시즌 NBA 플레이오프는 그 어느때보다도 흥미롭다는 평가가 많았어요. 특히 우승팀 덴버 너기츠의 간판스타 니콜라 요키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쩍벌어지더라고요. 같은 센터 포지션을 봤던 선수의 시선에는 어떻게 비칠까요?
뭐,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만큼 대단한 선수죠. 이건 팬이나 선수나 관계자나 다 비슷할거에요. 정말 엄청나게 잘한다 그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잖아요. 요키치하면 유니크하다는 말이 많이 따라붙던데 100%동감합니다. 현재 그가 펼치는 플레이를 그가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경기를 보고있노라면 저도 헛웃음이 나와요.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싶거든요.
Q.스테판 커리가 3점 시대를 열었던것처럼, 요키치의 플레이도 트랜드가 될 것이다는 말도 있어요.
글쎄요. 제가 볼 때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요키치처럼 플레이 할 수 있는 센터가 있으면 팀이 강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문제는 트랜드가 되기에는 그러한 플레이를 누가 따라할 수 있을까싶거든요. 자라나는 후배들이 나도 요키치처럼 해봐야지 한다고 해서 될 수 있을 것 같지않아요. 예전에 샤킬 오닐이 몸으로 다 때려부수고 다녔잖아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트랜드가 되지 못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수비진을 박살내면 좋은 것은 다들 알지만 그만한 신체에 파워와 유연성을 겸비해야되는데 그게 노력한다고 갖춰지는게 아니잖아요. 요키치도 마찬가지죠. 그만한 자리까지 올라가고자 엄청난 노력을 했겠지만 거기에 더해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요소가 너무 많아요. 노력으로 좋은 선수는 될 수 있어도 요키치처럼은 되기 힘든 이유죠.
Q.요키치를 보면 어떤 점이 가장 눈에 들어오나요?
장점이 정말 많은 선수죠. 일단 슛과 패스가 좋은데 그냥 좋은게 아니라 슛은 슈터 수준 패스는 포인트가드 수준이라고 하잖아요. 뭐, 그냥 말 다했죠. 그런 부분은 다들 너무 잘 알고 계신 부분이고 저는 그 친구의 스텝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건 아무도 못 따라할 듯 싶어요. 오랜시간 농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착하게된 부분이라서요. 거기에 박자를 늦췄다가 빠르게 했다가 하는 것도 독문절기라고 봐야죠. 패스는 따라하는 선수가 생길 수도 있어요. 본인에게 수비가 몰리다보니 이를 이용해서 다른 동료들에게 제타이밍에서 빼주고 찔러주고 하는 등의 플레이는 어린시절부터 무수한 상황을 겪어가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스텝, 박자 이런 것은 요키치 개인의 감각적인 부분이 강해서 따라하기 힘든 영역같아요.
Q.스텝이라하면 골밑에서의 다양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부분을 얘기하는 거죠?
종합적이죠. 그런 부분도 당연히 포함됐고요. 거기에 더해, 예를 들어 레이업을 올라간다거나 엇박자로 슛을 쏜다거나 하는 등 많은 플레이의 스텝이 다른 선수들과 달라요. 자신만의 스텝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기에 그 운동능력 대단한 괴수같은 선수들도 막아내지 못하지않나 싶어요. 보면 그냥 신기해요. 도대체 어릴 때부터 누가 어떤 식으로 지도를 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Q.지난 일이지만 현역 시절에 요키치처럼 패스도 많이하면서 플레이했으면 평가가 더 좋지않았을까 싶어요.
글쎄요. 공격력도 좋은 선수가 패스도 잘 빼주고 어시스트도 많이 만들어내면 금상첨화겠죠. 평가야 뭐, 당연히 팍팍 올라갈 것이고요. 현역 시절에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안되겠다싶으면 바로바로 빼주면 되는데 지가 뭐라고 무리해서 던져대냐는 비난도 꽤 있었죠. 일일이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일부만 말씀드려볼께요. 제가 패스를 빼줘서 제깍제깍 득점으로 연결되면 왜 그렇게 안했겠어요. 저 한창 젊었을 때는 외국인선수가 막는데도 더블팀이 들어왔는데요. 하지만 패스를 했는데도 해결이 잘 안되니까 그냥 제가 던져버리게되는 거죠. 요키치와 덴버를 봐요. 요키치가 패스를 엄청 잘하는 선수이기도 하지만 패스를 빼주면 동료들이 해결을 해주니까 선순환이 되는거에요. 득점능력이 좋은선수들이 내외곽에 걸쳐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패스를 받을 준비를 하고, 또 마무리를 짓잖아요. 요키치 입장에서는 더더욱 신바람이 날 수 밖에요. 이렇듯 센터와 외곽 선수들간 플레이가 유기적으로 잘 맞으면 좋은 결과가 나는 것이고 반대로 그렇지못하다면 여러모로 힘들어지는 것이죠. 올시즌 우승하기는 했지만 이전까지만해도 덴버는 플레이오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 정규시즌 MVP를 받았을 정도로 요키치의 플레이는 물이 올랐었는데요. 함께 해줄 동료들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한 상태였고 팀 시스템도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었다고 봐야겠죠. 그것이 딱딱 맞아떨어진게 올시즌이고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Q.어찌보면 시간을 두고 하나씩 조각을 맞춰온 과정이 컸네요.
그렇죠. NBA를 보면 매시즌 성적을 위해 올인하는 팀이 있는가하면 덴버처럼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팀도 있습니다. 사실 덴버가 우승을 못하면 난리나는 팀도 아니고요. 올시즌 처음으로 파이널에 올라간 것이잖아요. 하지만 국내리그에서는 덴버처럼하기 쉽지않다고 봅니다. 외국인선수도, 감독도 자주 바뀌니까요. 5년 정도 시간줄테니까 그 안에 전력 완성해서 우승에 도전해봐? 어렵죠. 특히 저를 데려온 팀들이 그랬습니다. 비싼 돈주고 영입한 것은 조각을 맞춰나가려는 의도가 아닌 당장 성적을 내려는 뜻이잖아요. 저도 구단도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는거죠. 외국인선수를 어떻게 뽑아서 서장훈이랑 조합해서 어떻게 해야겠다 플랜이 만들어질테고, 성적이 거기에 미치지못하면 제가 책임을 져야되는 것이겠고요. 계속 그런 것의 연속이었죠.
Q.요키치 플레이 얘기할 때 스텝을 언급한 부분이 개인적으로 신선했어요. 일반 팬들은 그런 부분을 잘 보지못하잖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서 오해하고 계신 것 중 하나가 서장훈은 외곽 플레이만 한다는 것이에요. 당시는 지금처럼 빅맨이 3점슛을 쏘는 경우가 적어서 더 깊은 인상을 받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공격이 100이라고 치면 70은 골대 근처에서 이뤄졌어요. 특히 제가 주특기로 했던 것은 수비수를 붙여놓고 던지는 턴 어라운드 페이드어웨이 슛이었죠. 그런 공격을 하려면 스텝이 굉장히 중요해요. 단순히 키만 커가지고 돌아가지고 던진다? 불가능한 것이거든요. 왜냐하면 박자도 스텝도 중요하고, 수비를 얼마나 내 몸에 잘 붙여가지고 타이밍을 잡아서 던져야 되느냐가 핵심이죠. 단순히 키만 커가지고 될 것 같으면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많고, 그런데 왜 그런 플레이가 잘 되지않겠어요. 잘 쓰기만하면 그런 무기가 없는데. 그것은 어릴 때부터 많은 연습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만이 가능해져요. 발을 빼고 넣고 하는 등의 기술적인 스텝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잘 생각 안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 한창때 플레이를 보면 저만의 리듬과 박자에 더해 스텝이 확실해요. 그나마 제가 비슷한 신장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더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스텝을 잘썼던 이유가 크다고 봅니다.
Q.지난회에 지도자 생각은 없다고 했잖아요. 그럼 NBA 하킴 올라주원처럼 따로 스킬 트레이닝같은 업체를 차려서 후배들을 가르쳐볼 생각은 없을까요?
하하핫…,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어요. 지금도 정말 빡빡하거든요. 거기에 더해 그런 방법은 아직 우리 정서에는 안맞다고 생각합니다. 엄연히 코치 감독이 있는데 서장훈한테가서 배우고 온다? 오픈 마인드 지도자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환영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해당 감독 입장에서는 내 지도법이 성에 안차나 생각할 수도 있고요.
Q.아참! 카카오톡은 안하는 것 같아요.
네네. 하지않습니다. 왜냐하면 뭐가 너무 많이와요. 광고 등도 막 쏟아지고 제 성격에 다 확인하게 되고. 조용하게 사는게 좋은 것 같아서 카카오톡은 물론 SNS도 일체 안해요. 사실 요새 방송을 많이 하다보니 텔레비전만 틀면 제 얼굴이 나오잖아요. 유투브나 그런 매체에도 관련 영상이 엄청 많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오히려 선수 시절보다도 훨씬 더 조심스러워요. ‘저것저것 방송에서는 맨날 입바른 소리하더니 실제로는 저것보라고’라는 식의 말도 나올 수 있고 저부터도 말과 행동이 너무 차이나게 보이는게 싫고요. 그래서 인터뷰도 잘 안해요. 예전 선수시절같으면야 언급이 자주되면 좋겠지만 방송은 그렇게 안해도 매일 언급되고 있어서…, 그래서 최근 제 생활은 늘 조용히, 최대한 조심해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웃음)
Q.오늘 바쁜 시간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장훈에게 농구는 무엇일까요?
농구는 제 인생이죠. 요즘은 방송으로 팬 분들을 찾아 뵙고 있어서 방송인 이미지도 강해졌지만 어디까지나 제 뿌리가 농구라는 것은 잊지않고 있습니다. KBL의 가장 열성적인 팬중 한명으로서 마음으로 항상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있고 응원중입니다. 언젠가 농구계에 기여할일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농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을 듯 싶어요. 농구를 했기에 서장훈이라는 이름을 남길 수 있었고 지금하고있는 방송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래저래 저에게 정말 많은 것을 안겨준 고마운 대상이죠. 농구를 그만큼 했기에 대중들이 저를 알고있어서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입담이라는지 하는 부분도 반전매력 등으로 작용한 부분이 크지않았나 싶어요. 모쪼록 농구계가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후배들도 그렇고 코칭 스탭 분들도 그렇고 좋은 소식 자주자주 들려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 KBL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Copyright ⓒ 점프볼.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형 따라서 테스트 보러 갔다가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0) | 2023.07.21 |
---|---|
“미녀 슈터요? 과분하지만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0) | 2023.07.09 |
“예능이요? 또 다른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6) | 2023.06.18 |
“3점슛 원툴? 그래도 10년넘게 잘 살아남았습니다 (1) | 2023.06.07 |
“전대만요? 잠깐이라도 불꽃이 보였다면 만족합니다” (0) | 2023.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