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정vs신기성, KBL판 키드와 마버리(상)
기사입력 2023.08.24. 오후 03:01 최종수정 2023.08.24. 오후 03:01
바스켓볼 배틀③
‘테크노 가드’ 주희정(46‧181cm) 고려대 감독과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48‧180cm) SPOTV 해설위원은 KBL 포인트가드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앞세워 코트를 호령했고 굵직한 커리어를 통해 리그 역사에 남을 족적을 찍었다.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계보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둘 또한 그들에 못지않은 활약을 오랜시간 보여줬다.
대학시절, 프로 초창기에 걸쳐 둘은 적지않은 시간동안 묘한 인연(?)을 이어갔다. 주희정은 빼어난 제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고려대 시절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한채 벤치를 달군 바 있다. 단순한 백업도 아닌 백업중에서도 백업이었다. 여기에는 신기성이라는 당시 최고의 1번이 버티고 있었던 이유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주희정은 ‘농구人터뷰’와의 인터뷰 당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 싶다. 정말 대단한 선배가 같은 포지션에 있던 부분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아예 기회 자체를 못받았던 시절이다. 나라는 선수를 확인해보려고도 하지않았다. 그때 분위기같았으면 신기성 선배가 없었다고해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리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에서도 알수 있듯이 뛰어난 선수는 어디서든 눈에 띄기 마련이다. 낙담한 주희정은 대학을 중퇴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래 블루버드에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그리고는 엄청난 노력을 통해 금세 주전급 1번으로 거듭나며 나래의 야전사령관 자리를 꿰찬다.
당시 주희정의 별명은 ‘아기 파랑새’였다. 팀에서는 이미 노장 반열에 들어섰던 정인교의 뒤를 이을 팀내 간판 선수로 주희정을 낙점했고 원주 팬들 역시 뜨거운 함성으로 차세대 스타를 반겼다. 하지만 주희정과 파랑새호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래가 허재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강병수와 함께 삼성 양경민, 김승기와 트레이드 되고 만다.
허재가 간판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중앙대 라인으로 팀이 개편된 영향이 컸다. 무엇보다 그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신기성을 7순위로 뽑는 행운이 뒤따르지 못했다면 불가능할 트레이드였다. 신기성으로 주희정을 대신한다는 복안이 있었기에 전도유망한 젊은 포인트가드를 포기할 수 있었다.
2번이나 얽혀버리게된 주희정과 신기성의 실타래에 대해 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스토리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후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들어본 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연이나 악연 등으로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프로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즈니스였을 뿐이다”고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대학시절 과소평가를 받았던 주희정과 달리 신기성은 꽃길만 걸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7픽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들 정도의 낮은 순위로 지명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기성 또한 프로 데뷔 전까지는 실력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못했다. 고려대 호화 멤버의 덕을 본 운좋은 1번이다는 혹평까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시절의 신기성은 결코 튀는 플레이를 하지않았다. 김병철, 양희승, 전희철, 현주엽은 각 대학에서 동년배 1~2위를 다투던 선수들이었다. 하나같이 개인 기량이 출중했던지라 공격적인 욕심이 컸다. 신기성 또한 개인기가 빼어난 선수였지만 자신을 억제하고 동료들의 플레이를 살려주는데 집중했다.
드래프트 당시 신기성의 진가를 많은 팀들이 놓쳤던 가장 큰 이유였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래의 야전사령관이 바뀌는 나비효과로까지 이어졌다. 본의아니게 삼성, 나래의 팀 구성을 크게 바꿔놓은 둘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둘다 양팀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까지 이끄는 등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래에서 신기성은 고려대 시절 눌러놓았던 공격 본능을 봉인해제하며 새로운 파랑새의 날개를 활짝 펼쳐든다. 역대 최고 슈팅가드 허재가 한팀이기는 했지만 당시의 그는 적지않은 나이로 인해 공격보다는 리딩에 집중하는 형태로 플레이 스타일을 변화시켜가고 있었다. 패스 위주의 퓨어 포인트가드보다는 공격력이 좋은 신기성과 호흡이 더 잘맞을 수 있는 이유였다. 실제로 2번같은 1번 신기성과 1번같은 2번 허재의 궁합은 매우 좋았다.
신기성은 ‘저 선수가 저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첫시즌부터 매서운 존재감을 과시했다. 어지간히 빠른 가드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운 스피드로 코트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며 돌격대장 역할을 해냈고 장점인 슈팅력을 앞세워 팀내 주포로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낸다. 특히 슈팅력은 어지간한 전문 슈터 이상이었다. 통산 필드골 48.4%, 3점슛 성공률 42.84%의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첫 시즌 엄청난 활약을 펼친 신기성은 전체 1순위 현주엽 등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하며 전시즌 주희정에 이어 소속팀 나래에 2년 연속으로 신인왕을 가져다준다. 특정팀에서 서로 다른 포인트가드가 연속으로 신인왕을 수상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연습생으로 주희정을 키워내고 7순위로 신기성을 뽑은 나래의 눈썰미가 놀라운 대목이다.
당시 신기성은 공격형 포인트가드의 대명사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토탈패키지에 가깝다. 언제부턴가 KBL은 정통 포인트가드 품귀현상이 일고 있다. 포지션만 1번일 뿐 사실상 2, 3번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치는 단신 공격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원맨리딩이 가능한 신기성이 현시대에 온다면 퓨어 포인트가드라고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신기성이 허재, 김주성 등과 함께 원주 농구의 전성기를 열었다면 주희정 또한 삼성의 야전사령관으로서 막혀있던 혈을 뚫어주며 첫 우승에 공헌했다. 실업시절부터 명문으로 꼽히던 삼성은 프로 무대 참가 이후 좀처럼 성적이 나질 않았고 그로인해 자존심이 많이 상해있던 상태였다. 특히 라이벌 현대(KCC)의 상대적 약진은 더더욱 삼성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2000~01 시즌 첫 우승은 삼성의 숨통을 트이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주희정이 있었다. 강혁, 이규섭, 아티머스 맥클래리, 무스타파 호프, 문경은 등 각 포지션별로 호화 라인업을 구축한 삼성은 주희정의 지휘아래 끈끈한 조직력의 농구를 펼쳤고 그 결과 해당 시즌을 온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주희정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10.8득점, 11.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시리즈 MVP에 등극했다. 강혁(47‧188cm) 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감독 대행이 당시 방송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희정에 대해 평가한 부분이 있는데 내용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주희정이라는 인물이 대학시절의 고난을 딛고 어떻게해서 KBL을 대표하는 포인트가드가 되었는지 새삼 짐작가능하게 해준다.
“저도 선수시절부터 독종으로 통할만큼 장난아닌 사람인지라 진짜 주희정이라는 친구를 한번 뛰어넘어봐야겠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저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들은 알겁니다. 제가 얼마나 독한지! 그런데 말입니다. 하아…, 주희정 저 친구는 뭔가 좀 달라요. 옆에서 보지않으면 모를겁니다. 독함의 수준을 넘어 어찌 저렇게 할 수 있지 존경스러울만큼 미친 노력파에요. 지금은 깨달았어요. 저 친구는 못 당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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