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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최강팀 삼성을 잡아냈던 30대 후반의 허재

타임스토리

by 김종수(바람날개) 2023. 10. 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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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최강팀 삼성을 잡아냈던 30대 후반의 허재

기사입력 2023.10.05. 오전 03:01 최종수정 2023.10.05. 오전 03:01

[타임스토리⑫] 2000년 11월 18일

 

2000~01시즌 당시 KBL 최강팀은 단연 삼성 썬더스였다. 이전까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반복하며 실업 시절 명가의 이미지를 잇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전체 1순위로 대형 신인 이규섭을 뽑은 것을 비롯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외국인 포워드 아티머스 맥클레리 카드가 대박이 나는 등 여러 가지 호재가 한꺼번에 터지며 단숨에 강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규섭, 맥클레리에 더해 주희정, 강혁, 문경은, 김희선, 무스타파 호프 등 각 포지션별로 탄탄한 선수진이 완성된 삼성의 힘은 해당 시즌 기준으로 나머지 9개 구단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조성원, 조우현, 이정래, 에릭 이버츠 등을 앞세운 LG의 외곽농구도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지만 삼성을 감당해내기는 힘들었다. 삼성은 여유있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 챔피언결정전에서도 LG를 4승 1패로 가볍게 제압하며 통합우승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강력한 삼성을 상대로 정규시즌 1라운드 최대 이변을 일으킨 팀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원주 삼보(현 DB)다. 당시 삼성은 6연승의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전력, 분위기 모두 원체 좋았던지라 연패가 끊어질 것 같지가 않았는데 뜻밖에도 삼보가 거기에 브레이크를 걸어버렸다.

예상하기 힘들었다. 객관적 전력에서도 삼보가 밀렸던 상황에서 장신 외국인선수 모리스 조던(45·204cm)마저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해당 경기를 잡아낸다는게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공은 둥글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날 삼보 선수들은 허재를 중심으로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결국 경기 막판 후보들을 대거 투입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107대 94로 여유있는 낙승을 거둔다.

2000~01 시즌 정규리그 1라운드, <삼보(홈) vs 삼성(원정)>

이때까지 삼성은 시범 경기 포함 단 한차례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는 퍼펙트한 연승행진을 이어왔다. 프로 경기의 의외성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 센터마저 빠진 삼보가 이를 막아세우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게 사실이었다. 주희정(46·180cm)과 강혁(47·187cm)이 이끄는 가드진은 공수에서 에너지레벨이 매우 높았다.

정신없이 뛰고달리며 상대 앞선을 공략했는데 달리는 농구에 강점이 있는 주희정과 어지간한 1번 이상으로 리딩과 패싱게임에 능한 강혁의 조합은 시너지가 대단했다. 거기에 타팀 같으면 주전으로도 손색이 없을 김희선(50·187㎝)이 뒤를 튼튼하게 받쳐줬던지라 ‘가드 왕국’이다는 평가 속에서 부러움을 샀다.

골밑도 튼튼했다. 아티머스 맥클래리(50·191cm)는 삼성 입장에서 잭팟이었다. 이전 삼성은 2시즌 연속 4강행에 공헌한 외국인 빅맨 버넬 싱글턴과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얼굴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10순위까지 밀려버리며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니라 다를까 쓸만하다고 평가받던 장신 외국인 선수는 모두 타팀에서 데려가 버린지라 큰 기대없이 3~4번을 오가는 유형의 포워드 맥클레리를 선발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맥클레리 영입은 의도와는 다르게 신의 한수가 됐다. 파워와 테크닉은 물론 긴 슛 레인지까지 갖춘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맥클레리가 공격에서 확실한 에이스 역할을 해주자 외국인센터 무스타파 호프(51·201cm)는 수비 등 궂은일에 집중하면서 결과적으로 좋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국가대표 슈터 문경은(52·190cm)이 외곽에서 슛을 펑펑 쏘아주고 신인 이규섭(46·198cm)은 내외곽을 오가며 공수에서 전천후로 활약했다.

이렇듯 각 포지션별로 쟁쟁한 선수들이 버티고 있던지라 ‘공략할 부분이 없다’는 탄식이 다른 팀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삼보에는 허재(58·188cm)가 있었다. 비록 당시 은퇴를 바라볼 30대 후반의 노장이었지만 특유의 승부욕 만큼은 여전했다. 나이에 따른 신체 능력 감소로 인해 경기마다 기복이 심해지고 있었으나 컨디션이 좋은 날에 걸리면 어느 팀도 쉽사리 막아내기 힘들었다.

 

마침 이날은 허재의 경기력이 올라온 날이었다. 외국인 빅맨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에 낙담하기보다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시위라도 하는 듯 전투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단단히 다진 상태였다. 허재는 이날 2쿼터에만 17득점을 기록한 것을 비롯 무려 37득점(3점슛 5개)을 쏟아 부었다.

드라이브인, 미드레인지 점퍼, 3점슛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득점을 올린 것은 물론 특유의 타이밍을 뺏는 공격을 통해 삼성 수비진으로부터 많은 파울을 유발시켰다. 허재와 함께 삼보의 앞선을 이끌어간 선수는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40·180cm)이었다. 말년의 허재는 공격뿐 아니라 리딩에도 많이 참여했다.

본래부터 넓은 시야와 출중한 패싱능력을 갖췄던지라 주포지션인 슈팅 가드 외에 포인트가드도 가능했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주로 2번을 맡았다. 소속팀, 국가대표팀 어디를 가도 주득점원 역할을 해야할 에이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득점 머신 스타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패스 등을 통해 게임을 풀어나가는 역할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노련한 슈팅가드 허재와 공격적인 젊은 포인트가드 신기성의 호흡은 좋았다. 삼보시절 허재는 슈팅가드이면서도 리딩의 비중이 높았고, 신기성은 포인트가드이지만 공격 쪽에서 강점을 보였다. 때문에 허재가 패스를 주고 신기성이 받아먹는 플레이도 많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맞는 파트너였다.

이날 유달리 컨디션이 좋았던 허재는 고득점을 올리면서도 빈 공간에 있는 동료들의 움직임을 잘 살폈고 그로 인해 '백인 탱크'로 불리던 존 와센버그(49·191cm)는 30득점이나 올릴 수 있었다. 골밑 근처에서 자리만 잡고 있으면 적절한 타이밍에서 허재의 질좋은 패스가 계속해서 들어갔기 때문이다.

허재와 와센버그가 득점을 이끌자 몇 경기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신기성과 양경민도 살아났다. 신기성은 한창 물이 오른 주희정을 상대로 연신 돌파를 성공시키는 등 10득점을 올렸고 주전 스몰포워드 양경민(51·193㎝) 또한 외곽찬스에서 차곡차곡 3점슛을 적중시키며 15득점으로 지원사격 했다.

팀 전체적인 경기력이 좋아지자 식스맨들도 힘을 보탰다. 정경호(53·202㎝)는 평소 출장 시간의 곱절을 뛰며 골밑슛으로만 8득점을 올렸다. 체격조건을 활용해 삼성 센터진과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벌이며 외국인센터가 빠진 빈자리를 상당 부분 메워줬다. 루키 박종덕(46·196㎝)과 연제석(46·193㎝)도 수비와 허슬플레이를 통해 신인다운 근성을 과시했다.

이전까지 잘 나갔던 삼성은 초반부터 분위기가 넘어가자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기내내 페이스를 찾지 못했다. 맥클레리(45득점, 3점슛 2개)만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이규섭 정도가 뒤를 받쳤을 뿐 외곽에서 공격을 이끌어야할 문경은이 양경민의 수비에 막히며 무득점을 기록하고 5반칙 퇴장을 당하는 등 전체적으로 팀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해당 시즌의 삼보는 강팀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날 만큼은 우승후보가 부럽지 않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KBL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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