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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크면 빅맨? 적성보다는 틀에 끼워 맞췄던 그 시절

농구

by 김종수(바람날개) 2023. 6. 2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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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크면 빅맨? 적성보다는 틀에 끼워 맞췄던 그 시절

기사입력 2023.06.16. 오전 11:31 최종수정 2023.06.16. 오전 11:31

[타임스토리⑥] 포지션 변경에 힘겨워했던 혼혈선수들

KBL에서 적지 않은 해외파 혼혈 스타가 활약했다. 전태풍(미국명 토니 애킨스‧43‧179cm), 이승준(미국명 에릭 산드린‧45‧205cm), 이동준(미국명 다니엘 산드린‧43‧200cm), 문태영(미국명 그레고리 스티븐슨‧45‧194cm), 문태종(미국명 제로드 스티븐슨‧47‧197cm), 김민수(아르헨티나명 훌리안 파우스토 페르난데스 김·41·200cm) 등이 대표적이다.

원하준(미국명 케빈 미첼‧43‧183.7cm)과 박태양(미국명 크리스 밴‧37‧179.2cm)은 얼마 뛰지 못하고 리그를 떠났으며 앤서니 갤러웨이, 일본계 혼혈 료스케 노자와, 앤드류 에스테보, 조셉 폰테놋, 로널드 틴슬리, 마크 월링턴, 파크웨인 클리브랜드 등은 KBL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이 흔혈 드래프트를 통해 KBL에 들어왔으며 김민수, 이동준만이 국내 대학을 거쳐 신인 드래프트로 입성한 케이스다. NBA 레전드 팀 던컨과 웨이크포레스트 대학 시절 콤비로 유명했으며 SK에서도 외국인가드로 뛴 경력을 자랑했던 토니 러틀랜드(48·187cm)는 문태종 드래프트 당시 참가 의사를 드러냈으나 최종적으로 불참했다. 이미 기량이 하락세를 찍던 시점에서 지명 가능성을 낮게 보고 미리 포기한 의도가 크다.

지금이야 신장 못지않게 선수의 적성이나 재능도 중요시하는 분위기다. 최준용(29·200.2cm)은 그간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포인트 포워드로 활약하고 있고 송교창(26·201.3cm) 또한 신인시절부터 스몰포워드로 키워졌다. 그외 정효근, 김상규 등 다수의 장신자가 빅맨 외의 포지션에서 뛰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해외파로는 이현중(23·202cm), 여준석(21·203cm)도 있다.

아쉽게도 그 시절은 달랐다. 장신자가 귀한 현실에서 키가 2m에 육박하는 선수는 대부분 빅맨 포지션을 맡았다. 180cm 안팎의 단신자야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 없겠지만 장신자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폭이 넓음에도 불구하고 크다는 이유만으로 맞지 않는 옷을 입는 케이스가 많았다.

이는 혼혈선수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이승준은 내외곽을 오가며 슛을 던지고 페이스업을 즐기는 스몰포워드로 커왔다. 김민수도 스몰포워드 출신이었다. 하지만 사이즈와 운동능력을 겸비한 이들에게 국내 지도자들은 빅맨 역할을 요구했다. 그로인해 골밑에서의 몸싸움 요령, 리바운드 쟁탈 등 기존 플레이 스타일을 대부분 버리고 새로이 포스트 플레이를 익혀야 하는 고역을 겪었다.

여기에 대해 김민수 경희대 코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신장으로 포지션을 정하지 않았지만 당시 국내 분위기는 달랐다. 나처럼 2m정도 되는 선수는 무조건 빅맨을 해야 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큰 불만도 없었다. 어차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만 몸에 배인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았다. 골밑에만 충실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외곽에 나와서 플레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보다 힘이 약한 선수가 몸싸움을 걸어오면 그냥 뿌리치거나 뚫어내야 하는데 스윽 피하고 슛을 쏘게 되는데…, 스스로도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후 감독님들께서 장점을 인정해주시고 스트레치 빅맨으로 활약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동준 또한 갑작스런 빅맨 전환으로 힘들어한 케이스다. 그는 "미국에서 주로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맡았다. 빅맨같은 경우 어린 시절 잠깐 경험하기는 했는데 사실상 많이 낯설고 생소했다. 키 크고 몸 좋으니까 빅맨을 요구했고 그로인해 포스트업 등 골밑플레이도 몰랐다가 한국에서 배웠다. 적지않은 나이에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려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고 익숙해지는데 오랜시간이 걸렸다"며 어려웠던 적응의 과정을 회상했다.

문태종, 문태영 형제같은 경우는 이같은 포지션 변경에서 빗겨갔다. 빅맨을 보기에는 조금 아쉬운 신장과 이미 스윙맨 유형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굳어져버린 상태에서 변화를 준다는 것은 누가봐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태풍은 전형적인 포인트가드였다. 신장도 그렇고 여러가지면에서 그에게 포지션 변화를 요구한 이는 없었지만 대신 다른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컸다고 한다.

“선수마다 고유의 스타일이 있어요. 그러한 유형으로 성인 무대까지 밟았다는 것은 완전히 몸에 배여있다는 것이에요. 거기에 억지로 변화를 주려하고 심한 간섭이 들어가게 되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져요. 포인트가드는 팀을 지휘하는 자리에요. 신바람이 나야 팀을 잘 지휘할 수 있어요. 전혀 다른 방식의 플레이를 강요당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도 흔들리게되요”

전태풍은 전형적인 미국식 듀얼 가드였다. 유려한 드리블로 내외곽을 헤집고 다니며 득점을 올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빈 공간에 날카롭게 패스를 꽂아넣는다. 기회다 싶으면 구태여 동료를 찾기보다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한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실제로 거기에 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그와 함께한 감독들은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지적하기 바빴다. 전태풍 왈 그나마 허재 감독 정도가 스타일을 어느 정도 인정해준 편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로 둘은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물론 퓨어 포인트가드와 듀얼 가드중 어떤게 더 나은지를 가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시대에 따라 트랜드의 차이는 있지만 두 유형 모두 팀을 이기게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문제는 전태풍은 자신의 공격력을 살리는 쪽으로 성장해온 가드이고 또 그런 플레이를 가장 잘했다. 워낙 기대치가 높았던 선수이니만큼 그만큼 활용을 하려면 틀에 맞추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게 잘 맞는 사용법이었다는 평가다. 보조리딩이나 링커 역할에 능한 동료들이 함께 뛰었다면 더더욱 신바람이 났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제 다 옛일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현재는 신체조건 못지않게 선수들의 재능이나 적성도 중시한다. 2m 이상의 장신포워드는 더 이상 유니크한 존재까지는 아니며 슈팅가드에 가까운 선수도 감독의 역량이나 팀 전술에 따라 얼마든지 1번으로 활약이 가능해졌다. 리딩, 패싱게임 등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은 동료들이 나누면 된다.

그 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여러모로 아쉬움도 남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때를 거쳐왔기에 현재도 있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혼혈선수들을 돌아봤을 때 이승준, 김민수(이상 스몰포워드), 이동준(포인트가드) 등이 자신의 포지션에서 뛰었다면 어떘을까 궁금해지기는 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문복주 기자, 홍기웅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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