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체 이미지, ‘대구의 봄’은 언제 올까?
기사입력 2023.12.11. 오전 08:52 최종수정 2023.12.11. 오전 08:52
‘챔피언결정전에서 강했던 승리의 도시는?’ 위와 같은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팀은 단연 6회 우승의 울산이다. 부산에서 연고지를 옮긴 후 한동안 암흑기를 거쳤지만 KCC와의 전략적 트레이드를 통해 1순위 지명권을 가져오게 되면서 팀의 운명 자체가 바뀌었다. 신선우 감독은 적극적으로 양동근을 추천했고 이후 역대 최고 스틸픽 함지훈까지 합류하면서 왕조의 역사를 꽃피웠다.
그 외 안양(4회), 서울(3회, 삼성‧SK 합산), 전주(3회), 대전(2회) 등이 2회 우승을 기록한 도시다. 부산의 경우 현 KCC까지 무려 3개의 팀이 오간바 있지만 우승 횟수는 원년 1회가 전부다. 창원 또한 구단의 지원, 팬들의 성원과는 별개로 아직까지 단 한번의 우승도 없다. 인천같은 경우 무관 속에서 연고지가 사라져버렸는지라 당분간 우승과는 인연이 없어졌다.
대구 역시 아쉬움이 큰 도시다. 동양 오리온스 시절 원년부터 리그에 참여했고 당시 전희철, 김병철 등 강호 고려대 선수들을 앞세워 스타트를 끊었던 만큼 성적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줄 토종 에이스 부재로 플레이오프에서는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전희철은 포지션은 파워포워드였지만 몸싸움이나 포스트 지배력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적받았는데 그렇다고 스윙맨을 보기에는 움직임이나 슈팅력에서 아쉬움이 컸다. 한번씩 폭발하며 임팩트는 보여줬으나 꾸준함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팀내 숙원인 포인트가드같은 경우 신장 등을 봤을 때는 김병철이 맡아주는게 제일좋았다.
특히 2번째 드래프트에서 대형 슈터 조우현이 2순위로 지명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김병철은 이미 고려대 시절에도 야전사령관으로의 변신에 실패한 바 있다. 드리블, 돌파, 슈팅 등 가지고 있는 스킬은 빼어났지만 시야가 넓지 못하고 게임운영 능력 등에서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본인 공격은 잘했지만 동료를 살려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결국 고려대 시절에 이어 다시금 1번 전환에 실패하고 만다. 만약 김병철이 포인트가드를 평균 수준으로라도 소화해줬다면 당시 동양은 김병철, 조우현, 전희철이라는 위력적인 빅3도 가능했을 것이다. 조우현같은 경우 BQ가 좋아 추승균처럼 연결고리 역할도 잘하는 타입의 선수였기에 더더욱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슈터로만 보이던 조우현은 창원 LG로 소속을 옮긴 후 포인트가드로 포지션을 변경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해준다. 스몰포워드가 익숙한 선수였지만 속공, 3점슛을 주요 옵션으로 쓰던 팀에서 수준급 볼 핸들링을 앞세워 빠르게 코트를 넘어와 간결하게 패스를 돌리는 플레이를 통해 야전사령관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해냈다.
대구 농구 역대 최악의 겨울은 단연 1998~99시즌이었다. 허남영, 박재일, 김병철(이상 상무), 전희철(공익근무요원) 등 주축 토종 선수들이 대거 군 입대를 하고 유일한 희망으로 꼽혔던 외국인 빅맨 그렉 콜버트마저 무단이탈하면서 삽시간에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1998년 11월 24일 수원 삼성에 70-73으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32번을 내리 졌다.
그러다 해가 바뀐 1999년 2월 28일 광주 나산에 80-66으로 승리하면서 지긋지긋한 연패에서 겨우 벗어났다. 같은 기간 원정 18연패 기록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지난달 20일 삼성(서울)에 의해 깨졌다. 대구의 최다 연패 기록은 프로축구 전북 버팔로(1994년)의 10연패, 프로배구 한국전력의 25연패(2008~2009시즌, 2012~2013시즌)와 더불어 각 종목 불명예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대구는 최종적으로 3승 42패(0.067)를 기록했는데 이는 앞으로도 어지간해서는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평가된다. 다음 시즌부터 나아지기는 했지만 약체 이미지는 여전했다. 전희철과 김병철이 돌아왔음에도 2시즌 연속(1998-99시즌 제외) 플레이오프진출에 실패하며 대구 팬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시절이었다. 전희철, 김병철 중심의 팀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쏟아져나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도저히 답이 안 보이던 대구 농구에 처음으로 봄을 가져다준 선수는 ‘매직 핸드’ 김승현(44‧175cm)이었다. 유력한 2순위 후보였지만 골드뱅크가 듀얼가드 전형수를 지명하면서 대구는 3순위 지명권으로 천재 포인트가드를 품에 안는데 성공한다.
김승현은 대구 농구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잘 뛰고 잘 달리는 마르커스 힉스는 김승현의 패스를 받아 안정적으로 득점을 올려줬고 라이언 페리맨은 20순위라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든든하게 포스트를 지켜줬다. 김승현, 힉스, 페리맨의 빅3가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기존선수들도 어느 정도 몫을 해주자 단숨에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제패하며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전 시즌 꼴찌팀이 단숨에 1위로 올라서는 기적 같은 일이 현실화 된 것이다. 아쉽게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치기는 했지만 다음 시즌 역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며 리그 최강팀 중 하나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대구의 봄’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력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던 김승현이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팀도 덩달아 약해져 갔다.
2007~08시즌부터 4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지 못했고 해당 기간 중 정규시즌 성적은 10위, 9위, 10위, 10위였다. 그리고 2010~11시즌을 마지막으로 오리온스는 고양으로 연고지를 옮겨간다. 15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7번, 정규시즌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무려 5번이었다. 프로야구에서 한화 이글스 팬들을 보살이라고 하는데 농구로 시선을 돌리면 대구 팬 역시 보살이나 다름없었다.
오리온스가 고양으로 연고지를 옮긴후 10여년간 대구는 농구팀이 없었다. 그러다 2021-22시즌부터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대구에서 다시 농구를 시작했다. 2020-21시즌을 끝으로 농구단 운영을 포기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인수해 연고지를 바꾼 것이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농구팀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컸지만 대구 팬들 입장에서는 다시 연고팀이 생긴다는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것은 역시나 그 시절 오리온스처럼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대구 이전 첫 시즌 27승 27패(승률 0.500)로 6위에 턱걸이했으나 지난 시즌 9위(승률 0.333)로 추락했다. 올 시즌은 더 심각하다. 18경기를 치른 현재 4승 14패(승률 0.222)로 삼성과 함께 2약으로 불리며 최하위권에 위치 중이다. 오리온스의 한창 안 좋았던 시절과 비교해 별다를게 없는 최근 행보다. 대구의 봄은 언제 다시 찾아올 것인가?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박상혁 기자, 문복주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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