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우승 현대모비스, 전설을 만든 드래프트
입력2024.02.13. 오전 9:01 기사원문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돌아보기(29)] 외전 / 각팀별 1순위 영향력은? ②
울산 현대모비스(전 부산 기아)
프로농구 최고 명문을 꼽으라면 울산 현대모비스가 빠질 수 없다. 명문을 결정하는데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이다. 프로야구의 타이거즈(한국시리즈 11번 진출 11번 우승)가 그렇듯 현대모비스는 타팀을 압도하는 우승기록을 자랑한다. 챔피언결정전과 정규리그를 각각 7회씩 제패했는데 모두 최다우승 기록이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못한 팀이 여럿 존재하는 것에 비춰봤을 때 그야말로 엄청난 커리어를 쌓아 올렸다고 인정받을만하다. 그외 챔피언결정전 최다 진출(10회)에 더해 한국프로농구 최초 3년 연속 우승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고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어느 팀이 가장 꾸준하게 강했냐고 묻는다면 현대모비스라고 답하는게 맞을 것이다. 성적이 말해주고있지않은가.
현대모비스는 지금까지 4번의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간 바 있다. 2003년(김동우), 2004년(양동근), 2012년 1월(김시래), 2016년(이종현)이 바로 그것으로 횟수만 놓고보면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지명 당시의 이름값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4인 모두 1순위로 예상되던 좋은 선수들이었다.
초반에는 1순위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드래프트 운이 좋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2년 야심차게 뽑은 성균관대 정훈(45‧199.2cm)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장세를 보였고 결국 2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TG(현 DB)의 백업 베테랑 가드 김승기와 맞바꾸기까지 이른다. 김승기 또한 나쁜 선수는 아니었지만 2순위로 지명한 장신 자원을 그리 허망하게 보냈다는 점에서 당시 팀이 느끼는 실망감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망의 1순위는 2003년에 처음 걸렸다.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폭발적인 운동능력이 돋보였던 김동우(44‧196cm)는 대학 시절부터 전천후 장신 포워드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선수다. 이는 정훈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두 선수는 약간 결이 달랐다. 정훈같은 경우 어느 정도 리딩과 패싱게임도 되는 다재다능함으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현재 최준용 등처럼 아주 잘하는 수준이 아닌 가능하다는 정도였다. 프로에서도 아마시절처럼 해주기만 해도 쏠쏠한 보탬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활용도가 애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우려대로 프로에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가 되면서 기대치에 한참 못미치는 성적을 내고만다.
김동우같은 경우 큰 키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내외곽을 휘젓고 다니며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주던 선수였다. 연세대 1학년 시절 당시 최강으로 군림했던 중앙대의 트윈타워 김주성, 송영진을 앞에 두고 투핸드 덩크를 작렬시키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팬들 사이에서 ‘현실판 서태웅이 등장했다’는 환호가 쏟아지게 된 계기다.
김동우라면 충분히 울산의 에이스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는 기대감이 컸다. 물론 정훈보다는 나았지만 김동우 또한 팀이나 팬들이 바라던 만큼은 해주지 못했다. 외모, 기량, 승부욕 등 스타가 될 자질은 차고 넘쳤으나 선수시절 내내 달고 살았던 부상의 여파가 컸다. 명지고 시절부터 무리한 훈련 등으로 인해 무릎 통증을 달고 살았는데 프로 입단 이후 발목부상을 겪으면서 가장 큰 장점이었던 운동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진단 및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 인대가 끊어진 채로 뛰었었고 그 결과 신인시절 다쳤을 당시 '향후 선수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바 있다. 이후 외곽슛을 갈고닦으며 장신 슈터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것을 감안했을 때 '어느 정도 몸 관리가 되어 운동능력을 잃지 않았던 김동우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있다시피 현대모비스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양동근(43‧181cm)의 등장이다. 그런 점에서 당시 KCC 신선우 감독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당시 신감독은 2003~04 시즌 도중 현대모비스의 센터 R.F. 바셋을 임대 영입하는 과정에서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KCC에게 양도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그로인해 형식상으로는 KCC가 가진 지명권이었지만 모비스가 실질적으로 지명권을 행사해 1순위로 양동근을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지명 당시만해도 양동근이 좋은 선수이기는 했으나 KBL역사에 남을 위대한 선수가 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현대모비스 측에서는 양동근과 이정석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신감독이 강력하게 양동근을 추천했다고 한다. 그 결과 현대모비스는 팀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를 얻게 된다. ‘현대모비스 왕조의 또 다른 주역은 신선우 감독이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유다.
신감독이 지명권 양도를 하지 않고 그후에도 양동근을 강력하게 추천하지 않았다면 KBL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물론 KCC도 바셋 영입으로 인해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를 추가했다. 하지만 1회 우승으로 퉁치기에는 양동근의 업적이 너무도 대단했다. 현대모비스 왕조의 시작은 양동근과 그를 현대모비스로 가게한 신감독의 콜라보부터라고 할 수 있다.
양동근은 듀얼가드계의 혁명가다. 현대모비스를 최다 우승팀으로 이끈 것을 떠나 KBL에서의 포인트가드 개념을 바꿔버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넓은 시야와 패싱센스를 통해 팀 동료들을 손끝으로 움직이는 게임 조립형 유형이 아닌 자신이 공수에 걸쳐 한발이라도 더 뛰면서 팀의 에너지레벨을 올려주는 파이터형 1번이었다.
양동근 이전에도 듀얼가드는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은 케이스는 드물었다. 팬들이나 관계자들은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등 이른바 퓨어 포인트가드가 진정한 1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동근 이후 그러한 편견이 깨졌고 현재는 주전급 정통파의 품귀 현상 속에서 듀얼가드가 득세하는 상황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양동근이 듀얼가드로서 성공을 거둠으로서 다양한 스타일의 1번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양동근은 신장은 크지 않지만 탄탄한 근육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파워와 스피드로 매치업 상대를 압살했다. 그와 몸싸움을 벌이는 대부분 상대 가드는 월등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이를 활용한 적극적인 포스트업은 현대모비스의 주요 전술중 하나였다. 자신과 비슷한 체격을 가진 가드를 만나면 누구를 막론하고 미스매치를 만들어버렸다.
거기에 더해 슈팅능력도 탁월했다. 3점슛, 미드레인지 등 거리를 가리지 않고 찬스다 싶으면 정확도 높은 슛을 꽂아 넣었는데 폭발력에 더해 안정감까지 갖추고 있었다. 특히 스크린을 타고 들어가 던지는 풀업 점퍼는 상대 팀에서 알고도 대응하기 힘들었다. 클러치 상황에서 해결사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 양동근 정도의 공격력을 갖춘 선수는 수비 쪽으로는 다소 힘을 덜 쓰는 경향이 많다. 양동근은 달랐다. 공격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에너지를 수비 쪽에 쏟아내며 리그 최상급 디펜더로 군림했다. 동 포지션에서 가장 힘이 강한 편이었으며 거기에 더해 기동성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성향 자체가 무척 적극적이고 부지런한지라 제대로 마음먹고 대인마크를 들어가면 어지간한 상대는 평소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이지 못한 채 봉쇄당하기 일쑤였다. 경기 시야가 더 넓고 패싱센스가 좋은 가드라 해도 양동근과 매치업되면 공수에서 모두 밀려버리며 제대로 된 플레이가 힘들었다.
양동근이 어떤 선수였는지는 화려한 수상 경력이 말해준다. 양동근은 현대모비스 한팀에서 원클럽맨으로 뛰며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정규시즌 MVP 4회(최다), 챔피언결정전 MVP 2회, 신인왕, 최우수 수비상 2회, 베스트 5 9회, 수비 5걸 3회를 수상했으며 심지어 패싱능력이 단점이라는 혹평을 부정이라도 하듯 어시스트왕까지 2차례나 거머쥐었다. 적어도 KBL내에서는 개인 커리어로 대적할 상대가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김시래(35‧178cm)같은 경우 짧은 시간 함께 했을 뿐이지만 여러 가지로 현대모비스에 많은 이익을 안겨준 선수로 남을 듯 하다. 김시래는 현대모비스와 불과 1시즌밖에 함께 하지 못했다. 못해서? 아니다. 대학농구 최고의 포인트가드로서 명성을 날린 것을 비롯 2011년 농구대잔치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였던 그는 프로에서의 첫 시즌 플레이오프 특히 챔피언결정전에서 제몫을 톡톡히 해줬다.
정규시즌 당시만 해도 제대로 적응을 못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큰 경기에서 제대로 활약해주며 양동근의 뒤를 이을 울산의 차세대 간판 가드로 입지를 굳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반전이 있었다. 2012~13시즌 당시 현대모비스는 골밑을 보완하기 위해 KBL무대서 검증된 골밑 자원인 외국인선수 로드 벤슨(40‧206.7cm)을 LG로부터 트레이드 영입했다.
이때 현대모비스가 거기에 대한 대가를 내주기로 한 걸로 발표가 되었는데, 애당초 알려진 것은 3년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중 1장이었다. 하지만 이때 실제로 합의된 것은 3년 동안 현대모비스의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중 1장 또는 김시래였다.
챔피언결정전에서 김시래의 활약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데다가 현대모비스의 전력 구성상 세 시즌 내에 로터리픽이 걸릴 확률이 적다고 판단한 LG는 김시래를 선택했다. 이렇게 김시래는 LG로 둥지를 옮기게 되었는데, 반대로 현대모비스는 우승을 위해 1순위 선수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셈이 되었다.
과거 KCC가 한번의 우승을 위해 양동근을 포기한 것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모비스는 KCC처럼 손해(?)를 보지 않았다. 양동근이 건재했기에 가드진에 별다른 약점이 없었고 김시래를 대가로 데려온 벤슨의 활약을 바탕으로 쓰리핏을 완성하면서 왕조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모비스 입장에서 지명당시 가장 크게 만족한 드래프트는 2016년일 것이다. 이종현(29‧203cm)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시절 이미 국가대표팀의 중심에서 활약할 만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신장은 센터로서 큰 편은 아니었지만 윙스팬이 무려 223cm로 신장대비 리치만 본다면 가히 NBA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수치였다.
거기에 기동성, 탄력을 두루 갖췄던지라 한창 좋았던 시절에는 큰 몸으로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며 실전에서 앨리웁 덩크까지 성공시켰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뽐냈다. 최준용에 더해 스트레치 4번으로 이름을 날린 강상재까지 있었지만 이미 드래프트 전부터 ‘1순위는 무조건 이종현이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았다.
최준용도 훌륭하고 강상재도 좋았다. 최준용까지 갈 것도 없이 강상재 또한 어지간한 해였다면 1순위로 뽑혀도 이상하지 않을 자원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드래프트는 ‘이종현 드래프트’로 불렸고 실제로 다들 인정했다.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던 유재학 전 감독이 당시 1순위 지명권을 확보하자 만세를 불렀을 정도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높은 기대치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기대 이상도 있지만 기대 이하도 존재한다. 물론 이종현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건강하기만 했다면 토종 최고 빅맨 자리를 차지하거나 그 정도 레벨에서 경쟁했을 것이 분명하다. 기대치만큼은 아니더라도 한팀의 주전 센터 역할은 무조건 가능할 듯 보였다.
아쉽게도 여기에 부상이라는 변수가 찾아들었고 불청객은 프로 생활 내내 이종현의 커리어를 휘감고 만다. 다들 알다시피 프로에서의 이종현은 대학 시절의 엄청난 위상과는 차이가 크다. 기대치만큼은 아니었지만 신인 시절, 2번째 시즌 중반까지는 무난했다. 주전급 토종 빅맨으로서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부상 악몽이 발목을 잡았다. 2018년 2월 4일 전자랜드전에서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고 이후 다음 시즌 힘겹게 돌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슬개골 파열로 또다시 수술을 받고 만다. 그 과정에서 전방 십자인대가 50% 정도 손상된 것이 밝혀지며 거기에 대한 수술까지 이어서 진행됐다. 재활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고 이후 돌아왔지만 더이상은 예전의 이종현이 아니었다. 이후 트레이드 등을 통해 여러 팀을 오가고 있으나 주전급과는 거리가 멀어진지 오래다.
현대모비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있으니 다름 아닌 함지훈(40‧197.4cm)이다. 2007년 드래프트에서 10순위로 지명된 이래 꾸준히 현대모비스 한팀에서만 뛰며 프랜차이즈 스타 그 이상의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다. 양동근과 팀내 첫번째 전설로서의 위상을 겨뤄볼만한 유일한 선수다.
2007년 드래프트는 황금드래프트로 불린다. 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정영삼, 박상오, 신명호, 이광재, 김영환 등 쟁쟁한 선수들이 배출됐다. 심지어 2라운드에 뽑힌 박구영, 김영수, 유병재, 송창무 등도 나름 존재감을 보였던 선수다.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영구제명 당하고 말았지만 정병국(40‧183cm)은 3라운드 출신으로 오랜시간 활약하며 당시 드래프트를 빛내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아무리 황금드래프트라고해도 함지훈이 10순위로 뽑힌 것은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부상 이력과 더불어 애매한 사이즈, 좋지 못한 운동능력 등이 저평가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함지훈은 대박이 났고 그를 지나친 상당수 팀들은 후회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당시로 돌아간다면 함지훈은 1순위를 다툴 자원이다. 현대모비스로서는 10순위로 역대급 1순위를 잡아낸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현대모비스는 새로운 스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다름아닌 지난 신인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팀에 입성한 박무빈(23‧184.4cm)이다. 빼어난 실력에 외모까지 출중해 첫 시즌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둑한 배짱을 바탕으로 중요한 순간 담대하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모습이다. 과거 2순위로 지명되어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효범처럼 1순위 부럽지 않은 준비된 빅 플레이어로 평가된다.
◆ 정리: 김동우, 양동근, 김시래, 이종현까지…, 4번의 1순위 신인을 품에 안았다. 양동근은 기대치를 한참 뛰어넘어 현대모비스의 전설로 거듭났고, 현재까지도 역대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1픽중 하나로 꼽힌다. 김시래는 한 시즌 밖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의 활약과 반대급부로 데려온 외국인빅맨이 왕조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또 다른 방면으로 이익을 안겼다, 반면 김동우, 이종현은 부상으로 말미암아 아마 시절의 높은 이름값을 프로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그림_김종수 칼럼니스트
#이미지참조_문복주 기자
#사진_KBL 제공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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