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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두호(사진 왼쪽)는 최근 빌 알지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8년 무승에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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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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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란 단순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일 뿐이다. -헨리 포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를 겪는다. 많이 준비했고 노력했다 하더라도 꼭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 중 한 명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과정의 가치를 인정하고 실패를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여기서 얻은 노하우는 다음 도전을 위한 기반이 되기도 한다.
물론 말은 쉽다. 이론상은 그렇지만 내가 직접 당사자가 돼 한 번, 두 번, 세 번 실패가 반복된다면 어떨까. 더욱이 앞서 성공을 맛봤거나 많은 이들이 나를 주목했던 경우, 실패했을 때 받는 데미지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시간까지 길어지게 되면 대부분 이들은 도약의 에너지를 잃어버리기 일쑤다.
UFC 페더급에서 활약 중인 최두호(33·코리안좀비MMA)는 그런 상황에서 포기보다 극복을 선택했다. 화려한 연승 행진도 잠시 연패와 부상이 이어졌고 환하게 그를 비췄던 스포트라이트는 빛을 잃고 깜빡거리더니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거듭된 좌절에 주변에서도 어느덧 '실패다'고 그의 행보를 단정짓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대 초반 일찍 재능을 발휘하며 얻었던 '슈퍼보이'라는 링네임이 무색할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이길 수 있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가져갔다. 흔들렸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이겨냈다. 무려 8년 만이다. 본인 또한 승리를 거둔 직후 "나도 나를 의심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는 스포츠의 오랜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최고의 기대주에서 거듭된 추락, 추락, 추락
최두호는 정찬성의 뒤를 이어 UFC에서 명성을 떨칠 코리안 파이터로 기대를 모았다. 주특기는 카운터를 통한 넉아웃 스타일이다. 정확한 타이밍에서 간결하게 정타를 꽂아 끝내는 경기를 선호한다. 정석적인 스트레이트 위주지만 탁월한 동체 시력에 더해 핸드 스피드가 워낙 빠르고 정확한지라 빈틈이 발견됐다 싶으면 여지없이 상대를 요격해 버린다.
순간적인 페이크 모션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한 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전형적 스나이퍼다. 때문에 녹아웃 경기가 많고 경기 시간 역시 짧게 가져가는지라 특유의 파이팅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래플링 압박의 김동현, 올라운드 플레이의 정찬성과 차이가 뚜렷한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했다.
단순하지만 강한 그의 한방은 아시아 무대를 넘어 UFC에서도 통했다. 2014년 UFC에 입성하기 무섭게 후안 푸이그(34·멕시코), 샘 시실리아(38·미국), 티아고 타바레스(39·브라질) 등을 연달아 초반에 박살내며 팬과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데이나 화이트 대표 역시 베테랑 컵 스완슨(40·미국)과의 일전을 앞두고 현장에서 따로 최두호를 불러 얘기를 나누고 자신의 SNS에 소개 영상을 링크하는 등 남다른 관심을 표한 바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거칠 것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정찬성을 능가할 재목이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 분위기와 상승세를 감안했을 때 적어도 스완슨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면 최두호는 단숨에 상위권을 위협할 스타로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최두호는 스완슨전에서 분패했다. 그 유명한 '진다는 게 이런 기분이군요. 두 번 다시는 패하지 않겠습니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 그리고 해당 발언은 두고두고 조롱거리로 반복됐다. 스완슨과의 경기는 2022년 7월 UFC 명예의 전당 '파이트 윙' 부문에 헌액됐다.
스완슨 전까지는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패하기는 했으나 1라운드를 압도하는 등 미완성 스타로서의 모습은 충분히 보여줬다. 문제는 제레미 스티븐스(38·미국)과의 일전이었다. 스완슨전에서 후반 노출했던 진흙탕 싸움에서의 약점이 또다시 드러났다. 거리싸움을 벌일 때만 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으나 스티븐스가 전진 스텝을 밟으며 몰아치기를 거듭하자 일방적으로 밀린 끝에 2라운에서 TKO로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최측에서는 최두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2019년 12월 부산대회에서 비교적 약체인 찰스 조르댕(30·캐나다)을 붙여주며 연패를 끊게 배려해줬다. 아쉽게는 최두호는 조르댕에게마저 패하고 말았다. 이전 패배들처럼 1라운드에서 우세를 보인 이후 역전패 당하는 패턴을 그대로 반복했다.
국내 팬들의 실망은 매우 컸다. 그나마 기대를 가졌던 팬들마저 상당수 등을 돌렸고 그를 가리키던 양성훈 감독에게마저 "유튜브 찍을 시간에 선수 훈련이나 제대로 시켜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에도 최두호는 영 풀리지 않았다. 2021년 대니 차베스(37·미국)와 경기가 잡혔으나 부상으로 무산됐고 카일 넬슨(33·캐나다)전 같은 경우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경기 중 일어난 우연한 헤드 버팅을 고의로 시도했다는 오해를 사서 감점을 받은 끝에 억울하게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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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두호(사진 왼쪽)의 카운터 펀치는 동체급 최고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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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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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의 승리, 일찍 피었지만 늦게 지기를…
어지간한 선수같았으면 '여기까지인가 보다'하고 체념할 법도 하건만 최두호는 그러지 않았다. 계속 부딪혔다. 결과는 8년 만의 승전보였다. 최두호는 지난달 21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UFC 에이펙스서 있었던 'UFC 파이트 나이트: 레모스 vs. 잔디로바'대회 페더급(65.8kg) 경기에서 빌 알지오(35·미국)에게 2라운드 3분 38초 만에 왼손 훅에 의한 TKO승을 거뒀다.
1라운드에 백스핀 엘보에 맞으며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침착하게 바디샷을 적중시키며 살아남았다. 2라운드부턴 왼손 잽과 훅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상대 백스핀 엘보 실패 후 카운터로 날린 왼손 훅이 제대로 들어갔고, 알지오는 눈을 움켜쥐며 주저앉아 경기를 포기했다. 최두호의 카운터가 다시금 옥타곤에서 터지는 순간이었다.
"사람들도 나를 의심했고, 나도 나를 의심했다." 8년 만에 승리를 거둔 최두호(15승 1무 4패)는 옥타곤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기나긴 불운이 마침내 멈추는 순간이었다. 최두호는 UFC 커리어 초창기 시절부터 차기 챔피언으로 거론될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2016년 당시 4위였던 스완슨전 패배를 시작으로 3연패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회복무요원 대기로 해외 시합 출전이 불가능해져 3년의 공백기가 생겼다. 사정을 잘 모르는 팬들은 최두호가 경기하지 않는다며 비난했다. 군 문제를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재기전에 나섰으나 잇단 부상과 헤드버팅 반칙 변수 등 악재가 이어지며 좀처럼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최두호가 다시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주변인들의 지지와 응원도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특히 소속팀 팀매드 양성훈 감독, 최근 2경기 최두호의 훈련 캠프를 진두지휘한 정찬성 감독 등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더불어 최두호는 자신을 질책했던 팬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조롱성 댓글도 다 보고 있다. 좋아하던 선수가 갑자기 경기를 안 하면 얼마나 배신감이 느껴지겠는가. 전부 나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면 또 다시 좋은 댓글로 바뀔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승리가 더욱 고무적인 점은 최두호가 새 무기를 선보이며 발전된 기량을 선보였다는 부분이다. 최두호는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1부리그에서 활약한 레슬러 알지오를 두 차례나 테이크다운시키며 대등 이상의 그래플링 공방을 벌였다. 또한 기존에 활용도가 높지 않았던 왼손 잽과 훅을 활용해 상대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입혔다.
최두호가 3연승 후 연패에 빠져 고생했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카운터 위주의 단순한 파이팅 스타일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이날 경기처럼 그래플링을 섞어준다면 다지 선다형 플레이가 가능해지며 상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현역 시절 변화의 귀재였던 정찬성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패를 끊어낸 최두호의 다음 목표는 톱15 랭킹 근처에 있는 상대다. 직전 알지오를 꺾은 넬슨은 9위 캘빈 케이터와 대결할 기회를 얻었던 만큼 최두호 역시 관심을 끌만한 상대와의 일전이 기대되고 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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