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훈 감독님하고 누가 더 키가 큰지 자웅을 겨뤄봤죠
기사입력 2022.10.18. 오전 09:01 최종수정 2022.10.18. 오전 09:01
[김종수의 농구人터뷰(58)] '작은 거인' 김태진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한다’는 유명한 명언에도 불구하고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신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을 향해 공을 집어넣어야하고 리바운드 등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상당수 과정 또한 머리 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끊임없이 위를 봐야하며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공을 터치하기 위해서는 쉴새없이 뛰고 손을 뻗어야 한다. 당연히 키나 리치가 더 긴 선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농구에서 180cm라는 신장은 최소값으로 불린다. 일반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꽤 큰키에 해당되겠지만 농구에서는 이른바 마지노선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신장이 최소 180cm는 되어야 선수로서 제대로 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매우 작은 키로 분류되며 180cm대 신장의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적성과 상관없이 가드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키 큰 선수같은 경우 장신가드부터 빅맨까지 선택의 영역이 넓지만 작은 선수들은 한정되어 있다. 신장이 작을수록 이래저래 불리하다. 하물며 그 이하 신장을 가졌다면 정말로 압도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다른 길을 알아보는 쪽이 어때?’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대단한 커리어를 쌓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이론 보그스(160cm), 스퍼드 웹(168cm), 아이재이아 토마스(174.6cm) 등이 NBA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배경에는 그들의 놀라울 정도의 작은 키도 한몫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KBL도 마찬가지다. NBA만큼 장신자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180cm 이하 단신자에게 불리한 것은 마찬가지다.
2004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이항범(168cm)이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데에는 모 중견 탤런트의 아들이라는 점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타 선수들 대비 압도적으로 작은 키가 주목을 끌었던 이유가 크다. 그간 KBL 역사를 살펴봐도 180cm이하 성공 사례는 많지않다. 천재 가드로 불렸던 김승현 정도가 특별한 케이스일뿐 대부분은 식스맨으로라도 살아남기 쉽지않았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이현민이 특별한 평가를 받는데에도 172.8cm의 키로 무려 16년동안 커리어를 이어갔던 이유가 크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명지대 김태진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프로필상 신장이 174cm로 되어있는데 본인피셜 실제로는 172cm가 맞다고 한다. 이항범이 공식 경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실질적 KBL 최단신 선수로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감독은 1997~98시즌부터 2008~09시즌까지 롱런에 성공했다. 비록 주전보다 백업멤버도 뛴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래저래 대단한 작은 거인이었음은 분명하다.
“작아서 불편했던 점요? 모두 다죠.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유리한 점이 무엇이 있었을까 싶어요. 작으니까 기본적으로 당연스레 빨라야했고요. 높이나 보폭의 단점을 커버하려면 무조건 더 많이 달리고 뛰어야 겨우겨우 평균을 따라갈 수 있었죠. 거기에 체급 자체에서 워낙 밀리는지라 수비에서 1인분이라도 하려면 몸을 강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더 많이 움직이는지라 체력도 좋아야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170cm초반 선수에게 KBL은 한마디로 정글이었다고보면 되요”
“잘 쉬는 것도 훈련입니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모교인 명지대학교에서 감독으로 있습니다. 더 좁혀서 바로 지금 상황을 말한다면 현재는 병원에 있네요. 왼쪽 발목이 안좋아서 수술을 받았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퇴원할 예정입니다. 선수시절 죽어라 뛰어다닌 것치고는 몸이 아파서 자주 고생한 편은 아닙니다만 당시 인대 문제 등으로 발목수술은 한번 받은 적은 있어요. 20년 정도 지나고나니 노후가 됐나봐요. 그 자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수술을 받은 상태인데 병원이 익숙하지못해서 그런지 조금 답답하네요. 어서 나가고싶어요. 전화 등으로 일단 상황을 보고받으면서 지시를 하고있지만 선수들도 걱정되고요. 감독이 자리를 비워서 되겠습니까. 어서가서 선수들을 보고싶습니다.(웃음)
Q.병원에 있다보니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럼요. 제가 74년생으로 이제 낼모레 50이에요. 이런 얘기하면 선배님들께서 ‘야! 장난하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냐’하면서 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세상 모든게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주변을 보면 건강한 사람들도 40대 중 후반으로 들어서면 그래도 표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특히나 나이를 아주 많이 먹으면 그런가보다 할수도 있지만, 지금 제 나이대는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단계인지라 ‘엊그제까지만해도 안그랬는데 내 몸이 왜 이러지?’하면서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기본적으로 친구들도 보면 다들 눈이 침침하다고 하더라고요. 노안이 시작되는거죠. 더빨리 오는 케이스도 많고요. 저도 돋보기 맞췄어요.
Q.운동선수 출신이라고 특별히 더 건강하지도 않나봐요?
하하핫…, 그럼요. 운동선수 출신들이 힘이나 몸을 쓰는 요령 등은 일반인 분들보다 분명 더 나은 부분이 많을거에요. 하지만 신체능력하고 건강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면역력, 질병 이런 것은 운동선수 출신이라고 별반 특별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에 무리를 많이해서 관절이나 근육 등이 안좋은 분들이 더 많아요. 어디 한두군데 안아픈 사람은 찾기 힘들걸요. 우스갯소리로 젊은 시절 열심히 운동한 훈장이라고도 위안을 삼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게 훈장인가요. 사람의 신체라는 것은 아주 정직해요. 개인별로 내구성의 차이는 있겠으나 많이 쓰게되면 쓴만큼 나중에 다 표가 나요. 어찌보면 젊은 시절에 기운을 땡겨쓰는 대출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싶어요.
Q.생각해보면 프로선수들은 무리를 안할 수가 없겠어요.
그럼요. 몸이 재산인 것은 잘알고 있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훈련, 경기 등에서 무리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훈련해야 몸이 강해질 수 있고 거기에 기술, 경험 등을 입혀 성장해야 선수로 뛸 수 있게 되잖아요. 선수가 되어서도 경쟁의 연속인지라 정말 크게 몸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되도록 경기에 나가려고 하죠. 당장 큰돈이 걸려있고 어찌보면 생존하고도 직결되니까요. 일반인분들 입장에서 신체적으로 무리를 안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선수가 무리를 안하는 것은 때로는 ‘노력을 안한다. 열정이 없다’라고 해석되기도 할거에요. 쉴새없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니까요.
Q.수술받은 분들 얘기들어보면 재활 과정이 더 힘들다고 하던데 빨리 퇴원하시네요?
아, 저요? 저같은 경우는 현역이 아닌지라 어느 정도 거동만 가능해지면 바로 퇴원이 가능하죠. 재활을 거쳐서 몸을 회복하고 그런 것은 아무래도 현역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얘기같아요. 아무래도 일반인과 현역선수는 재활, 회복의 개념자체부터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일반인은 아프지 않고 일상 생활만 지장없어도 되잖아요. 반면 현역 선수는 강도 높은 훈련을 다시 소화할만큼 제대로 회복되었느냐까지 체크해야 되겠고요. 저도 이제는 일반인에 가까운 입장이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재활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예전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어요. 수술이나 치료받고 당장 안아프면 혹은 덜아프면 그냥 뛰는거죠. 컨디션이나 몸상태 끌어올리는 것요? 그것도 훈련 혹은 실전에서 스스로 해결할 문제였고요.(웃음)
Q.아, 그래서 과거로 갈수록 선수 수명이 짧았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될 수 있겠네요. 저희 선배님들 세대까지 갈 것도 없이 저희 때만 봐도 수술 후 여유가 없었어요. 일단 주변에서 기다려주지를 않아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활에 대한 개념자체가 희박했던지라 어느 정도 덜 아프다 싶으면 그냥 뛰는거죠. 개인 자체도 그런 마인드를 가진 선수들이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팀이나 감독 눈치를 안볼수가 없죠. 자칫 근성이 부족하거나 엄살쟁이로 낙인찍힐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다르잖아요. 충분히 기다려줘요. 좋은 몸상태로 경기에 나서는게 서로 이익이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있죠. 지나치게 잦거나 길면 혹시 모르겠지만 어지간하면 팀에서 눈치도 주지않고요. 거기에 금전적으로도 어느 정도 보장이 되니까요. 아마 예전 부상투혼에 익숙했던 선배들도 지금 시대에서 농구를 하면 그때와는 다르게 가지않을까 싶어요. 그게 맞고요. 거기에 휴식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어요. 거기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관리사도 있고요. 저역시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중요성을 느끼고 있어서 선수들에게 ‘잘 쉬는 것도 훈련이다’고 늘 강조해요.
“제 키로 농구계에서 살아남은 자체가 엄청난 노력의 증거죠”
Q.최근 명지대 성적은 어떤가요?
아직은 하위 그룹에 있어요. 제가 오기 전부터 그랬는데 아직은 도약하는 않은 단계인지라 중위그룹으로 가려고 노력중입니다. 단체 스포츠 특성상 한꺼번에 확 바뀌지는 않잖아요. 한 걸음씩 밟아나가면서 지속적으로 팀의 단단함을 만들어가는게 중요하겠죠. 예전 명지대를 생각하시는 분들께서는 ‘제가 뛸 때와 비교해서 많이 떨어진다’는 말씀도 하세요. 당시에 조성훈, 박재일, 정재헌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나름 돌풍도 일으켰고요. 여기에는 스카웃적인 애로도 많아요. 대부분 유망주들이 너나할 것 없이 특정 대학에 몰리잖아요. 하위권 대학 주전보다 상위권 대학 백업이 프로에 가기 더 편한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예전에는 농구대잔치라는게 있었잖아요. 약체 대학 선수라도 중계방송이 되는 대회에서 활약하게되면 눈에 띄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얼굴 알리기가 힘들어졌어요. 더불어 하위권 대학으로 갈시 받게되는 각종 메리트도 거의 없어졌는지라 구태여 뱀머리가 되려는 선수가 없어요. 그냥 용꼬리를 선택하는거죠.
Q.선수 은퇴후 전자랜드 2군 감독 겸 전력분석코치, 1군 코치 그리고 현재는 모교에서 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공백기간이 거의 없었네요?
다행스럽게도 꾸준히 기회를 받아서 그렇게 갈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제가 거쳐온 과정이 지도자로서의 기본이 아닐까싶어요. 선수생활할 때는 주전, 식스맨, 후보 생활을 모두 해봤고 지도자로서도 다양하게 경험했잖아요. 그런만큼 선수들의 입장을 고르게 이해할 수 있죠. 역할도 대한 이해도도 높을 수밖에 없고요.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번씩 거쳐본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그런 점에서는 개인적으로 참 바람직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부 지도자들 같은 경우 코치생활을 잠깐하고 바로 감독이 되는 케이스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파격적으로 바로 사령탑에 앉은 케이스도 있잖아요. 아시겠지만 대다수가 오래가지를 못해요. 승진은 빨랐지만 아쉬운 결과가 많아요. 거기에는 그만큼 준비를 덜한 부분도 영향이 크다고 봐야될 듯 해요. 지도자로서의 재능은 있어보여서 빠르게 갔지만 그 재능을 제대로 다듬을 기간이 너무 없었던 것이죠.
Q.그런 점에서 꾸준히 농구계에 있던데에는 치열한 노력이 있었을 듯 싶어요.
그렇죠. 저는 모든 면에서 불리한 것 투성이에요. 일단 농구선수로 뛸만한 사이즈부터 아니었고 현역 시절 내내 핸디캡을 안고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어요. 주전으로 뛴 기간도 있다고 하지만 스타플레이어하고는 거리가 멀었고요. 비주류 대학 출신이라 학연 등에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잠깐 삐끗하면 그냥 묻히고 사라진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무조건 열심히했죠. 지금까지의 농구 인생을 한단어로 표현하면 ‘치열함’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농구계 후배들이 저보다 앞서나가는 모습도 자주 보지만 배아파하기보다는 급하게 생각말고 차분히 저의 길을 다지면서 가는게 중요하다고 늘 되내이고있어요.
Q.농구도 하나의 마라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확 불타오르고 꺼지는 것보다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성장하는게 결과적으로 더 좋잖아요.
그럼요. 그래서 선수들에게도 늘 이야기해요. 당장은 크게 뭔가가 보이지않더라도 지치지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그 시간은 꼭 보상받는다고요. 추승균, 주희정, 양동근 등 대표적인 표본들이 있잖아요. 이 선수들이 처음부터 막 스타고 주목받은 것은 아니에요. 프로에와서도 정말 꾸준하게 노력하고 자기관리를 멈추지 않았기에 롱런에 성공하고 엄청난 커리어까지 쌓았잖아요. 반면에 김승현, 방성윤 등은 재능하나만큼은 정말 엄청났지만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그것을 가져가지 못했어요. 재능을 믿지말고 노력을 믿어야 길게가더라고요. 저역시 지도자로 있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계속 배우는 자세를 잃지않으려고 합니다.
Q.두 아들도 농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행여나 키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은 들지 않았을까요?
안들었다면 거짓말이죠.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신장은 정말 엄청난 차이를 가르는 요소니까요. 저같은 단신은 더더욱 사이즈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느끼고 살았잖아요. 어쨌거나 아빠가 어릴적부터 농구를 하고 지낸걸 봐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둘다 흥미를 가지더라고요. 저는 적극적으로 추천도 그렇다고 반대도 하지않았습니다. 저희 집안이 농구에 특화된 장신 유전자를 타고 난 것도 아니고 뭐가됐든 좋아하는 쪽으로 밀어줄 생각이었어요. 저는 농구가 하고싶다고하니까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를 추천하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고등학생인 첫째는 178cm, 둘째는 중3인데 180cm입니다. 농구를 하는 다른 또래들에 비해 특별히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빠를 넘어선 것 만으로도 다행이죠.(웃음) 하지만 키를 메리트로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여러모로 많은 노력을 해야할 듯 싶어요.
Q.포지션은 어떻게 되나요?
둘째는 농구를 계속 이어갈지 고민중입니다. 잠시 쉬고있는데 다시 할수도 있고 아니면 그만둘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에요. 어떻게 해라 강요 할 생각은 없어요. 본인이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을 존중해줄 생각입니다. 첫째는 슈팅가드에요. 아직은 힘도 구력도 부족하지만 슛에 재능이 있더라고요. 신장이 어느 정도까지 클지는 알 수 없지만 저희 명지대 선배이신 조성원 형님같은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고 성장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갈리겠죠. 저같은 경우는 단신임에도 슛이 막 폭발적이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악착같은 수비와 리딩, 두가지로 먹고살았죠.
“유도훈 선배님과의 신장 대결은 정말 치열했었습니다”
Q.기억나요. 악착같은 수비…, 어찌보면 신기해요. 단신이 수비로 어필할 수 있다는 부분이.
그렇죠. 사실 농구에서 신장을 강조하는 부분 중 상당수는 수비때문이잖아요. 공격이야 스킬만 뛰어나면 어떻게든 풀어나가지만 수비는 정말 단신 선수에게 쥐약이거든요. 미스매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다들 신장 때문에 제 키로는 힘들 것이다고 판단했으나 역으로 바로 그 부분에서부터 풀어나가야겠다고. 마침 LG 시절 이충희 감독님이 수비를 매우 중시하는 분이셨어요. 본인은 현역 때 최고의 슈터였지만 지도자로서는 다양한 수비전술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선호하셨죠. 악착같은 것이야 제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었고요.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수비적인 부분에서 많이 성장한 듯 싶어요.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것인가요?
다른 사람들은 스카웃을 받았네. 주변에서 강력하게 추천을 해줬네 그러는데 저는 반대로 제가 농구를 좋아해서 적극적으로 하려고한 케이스에요. 그냥 농구부 훈련하는게 멋있고 저도 함께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도 키가 작아서…, 두어번 거절당했죠. 하지만 정말 좋아서 계속해서 부탁을 드렸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때에요. 그래도 갑작스럽게 키가 크는 사람들도 있고 혹시나 나중에 폭풍 성장같은 것 하지않을까 막연한 기대도 품었지만 결국 크지 않았네요.(웃음)
Q.근성있고 빠르니까 축구를 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키가 작다는 단점도 없어지게되고요.
그렇지 않아도 배재중학교 들어가서 축구부 감독님이 농구부로 두어번 찾아오셨어요. 키가 작아서 농구부에서는 고전했지만 뛰는 것 하나는 잘하니까 눈에 들어오셨나봐요. 저도 궁금하기는해요. 축구를 했으면 어디까지 올라갔을지. 하지만 문제는 제가 농구를 너무 좋아했다는것이에요. 열심히 키워주시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어요. 그냥 농구 외에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어머님께서 ‘너는 축구를 했으면 지금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벌었을 것이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세요. 농구에서는 늘 핸디캡을 안고 경쟁해야 했지만 축구에서는 비교적 평등하게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Q.처음부터 포지션은 포인트가드였을까요?
그렇죠.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단신 슈터나 공격수도 간혹 존재하기는 했지만 저는 단신중에서도 단신이었으니까요. 일단 대체적으로 포지션을 정할 때는 키순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보다 작은 선수가 있어야 저도 포워드라도 해볼텐데 항상 제가 제일 작았죠. 그래도 다행히 볼재간은 있었으니까 포인트가드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Q.공식적으로 KBL 최단신으로 보는게 맞을까요?
이항범 선수같은 경우도 있기는한데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은 받았지만 공식경기에서 데뷔를 안했잖아요. 그런 것을 감안하면 제가 최단신이 될 수도 있겠네요. (옥)범준이나 (김)승현이 등도 프로필 등을 감안했을 때는 저보다 작은 것 같지는 않고요. 물론 서로 비교해본 것은 아닌지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요. 큰 차이는 없을거에요. 어쨌거나 작은 것으로 1등을 찍게되는 경우도 생겼네요.(웃음)
Q.공식 프로필상에는 174cm로 되어있더라고요.
이게 사연이 좀 있어요. 2000~01 시즌 종료후 2대2 트레이드를 통해 KCC로 이적하게 됐거든요. 거기에는 저와 더불어 단신으로 유명한 유도훈 현 한국가스공사 감독님이 당시 플레잉코치로 있었어요. 그전부터 ‘둘중 누가 더 작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문득 저도 궁금해져서 아이디어를 내봤어요. 중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거든요. 거기서 정확하게 서로의 키를 비교해보기로 했죠. 그 결과 저는 172.4cm가 나오고 선배님은 172.7cm가 나왔어요. 제가 진거죠. 그러자 선배님이 ‘야, 너는 172cm고 나는 173cm야. 너는 반올림이 안되지만 나는 되잖아’ 그러시더라고요. 소수점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이었죠.(웃음)
“양복입고 싸우러갔냐고요? 절대 아닙니다”
Q.어쨌거나 최근 세대에서 평균 신장이 부쩍 커진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이게 좀 허수도 있지않나싶어요. 이현중, 송교창, 최준용, 여준석 등 빅맨이 아니면서도 빅맨급 신장을 가진 테크니션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평균 신장이 굉장히 커진 것 같잖아요. 실제로 예전보다 나아 진 것은 분명하죠. 농구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평균이 올라가기는 했잖아요. 하지만 현장 지도자 입장에서보면 아마추어 쪽에는 큰 선수들이 많이 없더라고요. 예전에는 키가 좀 크다싶으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농구도 많이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큰선수들도 운동을 안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현장에서는 작은 선수들이 더 눈에 많이 띄는 듯 싶어요.
Q.최근 신인드래프트에서 송동훈이 KCC에 깜짝 지명되었습니다. 작은 신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데, 비슷한 신장으로 롱런했던 선배 입장에서 단신가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제 뛰게될 무대는 아마가 아니라 프로잖아요. 이 부분을 잊지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어느 정도 기량이 되는 선수들같은 경우 아마무대에서는 고르게 여러 방향으로 기량을 보여주거든요. 비교적 약체 대학 에이스같은 경우는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도 과시했을 것이고요. 하지만 프로는 달라요.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단점으로 지적받기도 하거든요. 고르게 잘하는 것이 최상이겠지만 제대로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면 본인만의 확실한 특기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승현이처럼 패스 센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지 아님 신명호처럼 수비스페셜리스트가 되던가 말이에요. 적어도 한분야에서만큼은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줘야 살아남지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KCC가 송동훈에게 원하는 것은 준수한 볼 핸들링, 기본에 충실한 안정적인 볼배급 등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최상이겠죠.
Q.무엇보다 키가 작으면 수비에서 힘들어지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이것또한 본인이 이겨내야할 부분이죠. 사실 아무리 키가 작아도 수비에서 기본만 해준다면 단신 약점이 크게 덜어질 수 있거든요. 단신으로서 프로에 왔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쪽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잖아요. 거기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수비인데 평균 수준만 될 경우 출장시간 자체가 달라지게 되겠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LG시절 이충희 감독님은 수비를 매우 중시하셨어요. 저 또한 좋게 봐주셨던지라 계속해서 수비를 늘려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신이 빠르고 체력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거기에 더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시키셨어요. 틈만나면 ‘태진아, 너보다 큰 가드들이 포스트업치면 힘으로 버틸 수 있어? 못버티면 나는 너 쓰고싶어도 쓸 수 없어’라는 현실적인 조언이 뒤따랐죠. 그럴 때마다 저도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Q.스틸에도 일가견이 있었어요. 이른바 손질이 장난아니었나봐요.
스틸을 잘하려면 여러 가지가 함께 해야되요. 일단 발이나 손이 빨라야겠죠.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어야 말씀하신 손질도 가능해지니까요. 부지런한 것은 필수겠고요. 잠시도 쉬지않고 상대를 압박해야 거기서 빈틈이나 실책이 나오고 그때 공을 가로채는 것이죠. 어쨌거나 스틸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박히니까 수비할 때도 편한 부분이 있었어요. 제 앞에서 상대가드가 드리블을 오래치면 벤치쪽에서 ‘야! 태진이 앞에서 드리블 오래하지마. 저쪽으로 빨리 줘’라는 말이 들리기도 해요. 저는 성공한거죠. 그런 인식이 박혀있으면 상대도 적극적으로 들이대지않을 것이고 저는 그것을 또 이용해서 다른 방식으로 압박하거나 귀찮게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편 가드 역시 다양한 기술과 운영능력을 인정받아서 프로에 온 선수입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원할 때마다 공을 빼앗기는 사실상 많이 어렵죠.
Q.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스틸 갯수를 늘릴 수 있죠?
앞서 언급한데로 개인 능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 외에 팀 전술 속에서 가로채는 경우도 많이 생겨요. 당시 이충희 감독님은 대만리그에서도 경력을 쌓고 오신터인지라 당시 국내리그에 없던 수비전술도 종종 선보이셨어요. 그럴 경우 상대 앞선에서 많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그런 상황을 이용해 공을 많이 가로챌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가드는 우리팀의 전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되요. 그래야 그곳에서 또 다른 변칙운용도 가능해지거든요. 예측수비로 허를 찌를 수도 있고요. 수비의 기본은 상대가 내앞에서 마음놓고 플레이하지 못하게 하는데 있죠. 스틸갯수가 많아지면 상대팀에서도 경계를 하고 매치업 상대 역시 껄끄러워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까지만 가도 이미 수비 공헌도가 발휘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Q.함께 뛰었던 외국인 선수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저는 바로 에릭 이버츠가 떠오릅니다. 정말 성실하고 팀과 함께 하려는 마음이 강한 선수였던지라 모두가 좋아했어요. 아무래도 백인 선수인지라 흑인들처럼 운동능력이 탁월하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워낙 슛이 좋고 센스도 빼어났어요. 항상 꾸준하게 자신의 몫을 해줬습니다. 성격도 좋아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고요. 제가 감독이라면 함께 하고 싶은 유형의 선수입니다. 다만 당시에는 신장제한이 있던지라 사이즈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어서 지금 리그에서 뛰게된다면 메인으로는 아쉬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외국인선수 2인출장제라면 4번으로서 여전히 위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복이 없고 슛이 안정되어서 많은 감독님들이 좋아할거에요,
Q.가슴 아픈(?) 얘기일 수 있겠지만 탈모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요?
하하핫…, 예전 사진들을 시기별로 보면 그래도 초창기 때는 비교적 양호했어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심해졌죠. 이게 집안 유전인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할아버지가 대머리셨어요. LG시절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후 팀을 옮겨다니면서 식스맨 생활을 하던 와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봐요. 점점 빠지더라고요. 탈모약도 먹고 그러기는 했는데 별효과는 못봤어요. 그런데 뭐, 작은 키도 나중에는 신경끊었는데 탈모가 뭐라고요. 아직 시도는 안해봤지만 요즘에는 스포츠 머리도 해볼까 생각중이에요. 그러면 탈모가 덜 돋보이겠죠.
Q.전자랜드 코치 시절 KCC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양복을 입고 뛰어나와서 화제가 됐어요. 어느 정도는 의도된 행동이었을까요?
아이고! 다들 잊어버린줄 알았는데 어찌 그것을 또 기억을 해내셨네요. 의도된 행동은 전혀 아니었고요. 상황이 그렇다보니 저도 모르게 앞으로 튀어나간거에요. 그러다가 심판이 앞에 보이기에 딱 멈췄어요. 하지만 뛰어나가는 순간의 표정이나 리액션이 평소보다 좀 컸나봐요. 큰 경기의 특성상 저도 좀 업이 되지않았나싶어요. 카메라 기자님들이 또 기가막히게 순간 포착을 하셔서 마치 제대로 한번 싸우러 나가는 사람처럼 찍혀버렸습니다.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제가 뛰쳐나가는 장면에 슬램덩크 주제가도 넣어서 올렸다고하고, 그렇게 화제가 될줄은 정말 몰랐어요, 플레이오프잖아요. 많이 몰입했었나봐요.(웃음)
Q.마지막으로 농구인 김태진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팬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릴께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긴 시간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던 데에는 팬 분들의 응원덕이 정말 컸습니다. 프로농구선수가 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부분입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선수 시절에 그랬듯 지도자가 된 지금도 빠르지는 않지만 한걸음씩 꾸준하게 내딛고 있습니다. 좋은 선수들 잘 길러내고 제 스스로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항상 좋은일 가득하세요.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본인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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