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브라이언이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고 어느 고등학교 다니니? 나 프로선수 출신인데 나한테 한번 배워볼래?”
올 시즌 도중 갑작스럽게 서울 삼성 썬더스 사령탑을 맡게 된 김효범 감독대행이 2017~18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동네에서 농구를 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건넸던 말이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생활 은퇴후 G리그 모구단에 코치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사비로 먼 거리를 날아가 2번의 면접을 봤고 근 1년을 기다린 끝에 해당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염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일종의 백수 상태처럼 되고 말았으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에 관심이 많았고 꿈을 펼치기 위해서라도 미국에서의 공부와 경험은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경제적인 수입은 커녕 사비를 써가며 버티는 시간이었지만 마냥 놀지는 않았다.
해당기간 동안 농구 이론과 전문용어 등을 반복적으로 공부했고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수 있었다. 틈틈이 동네 인근을 돌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외려 사비로 먹을 것을 사주는 등 가르쳐주면서 돈을 썼다.
그만큼 누군가를 지도한다는 것에 관심이 컸고 그로인한 기쁨을 알아가던 시기였다. 어느 정도 각오를 했음에도 G리그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인가를 배워가면서 가르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행복했으나 기센 사람들 사이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생존의 시험대였다.
경력 많고 노련한 코칭스탭이야 연장자이자 선배같은 존재들이기에 그러려니 했으나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 할 선수들이 기 싸움을 걸어오거나 무시하듯 행동을 할 때면 멘탈이 통째로 흔들렸다. 지독하게 힘들고 외로웠지만 그럴 때마다 김효범은 스스로에게 되내였다고 한다.
'마음에 쏙 드는 환경에서 나와 잘맞는 선수들하고만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다양한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지금이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다' 김효범은 긍정의 마인드로 자신에 대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고 이후 시간이 지나자 상당수 선수들 역시 그를 코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자는 김 감독대행이 코치로 있던 2022년 그와 인터뷰를 한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전부터 상당히 궁금하게 생각하던 인물이었다. 현역시절 보여준 폭발적인 득점 퍼포먼스도 잊혀지지 않았지만 진짜 관심이 갔던 것은 다른 부분에서였다.
‘저의 인생의 멘토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효범 코치님에게는 제 진심을 다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등 김효범 이름 석자만 나오면 귀가 따갑도록 칭찬하는 이들이 적지않았다. 그중에는 타칭 악동컨셉의 선수도 여럿 포함되어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 유별나다는 이들에게까지 신뢰를 받는지 정말 알고싶어졌다.
물론 사람에 관한 부분은 지극히 주관적인지라 수학 공식처럼 척척 답을 구할 수는 없다. 심지어 그를 멘토로 여기고 따르는 이들마저도 이유가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한가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인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 다른 이들을 겪게 되고 그러한 경우 대부분은 호감보다는 반감을 갖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회는 함께 사는 곳이기에 다르다고 항상 충돌만 할 수는 없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잘 맞지 않는 부분을 맞춰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감독대행같은 경우 이해가 아닌 인정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아 너는 그런 스타일이구나’하고 캐릭터 자체를 받아들여버린다.
김 감독대행이 대단한 인격자라서 그러는게 아니다.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외국 생활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이런저런 색깔을 인정하는 마인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성향적으로 나와 잘 맞지 않더라도 농구적인 부분외 다른 쪽에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선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00이를 대할 때는 이런 부분을 조심해야지’하고 의식적으로 애써 노력하기보다는 자연스레 공감의 눈높이가 맞춰졌다. 거기에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닌 충분히 들어주고 경청하는 스타일인지라 그와 대화를 나누는 이는 충고나 조언을 들었다가 아닌 소통을 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충고나 조언 등에 신중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상대가 다소 이해하기 어렵게 다가오더라도 ‘이건 틀려’, ‘네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설명해줄까?’ 등 자신의 입장에서 억지로 바꾸려들지 않는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은 나도 적극 공감한다’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상대 입장에 함께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그가 삼성 감독대행직을 맡았다고 했을 때는 기대와 우려의 감정이 함께 들었다. 당장 성적을 내야 능력 있다고 인정을 받는 현실에서 선수 한명 한명과 소통을 하면서 나아가는 김효범식 성장 농구를 팀이 기다려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런 농구가 뿌리를 내리면 해당팀은 꾸준한 강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발전 방향에 구단이 함께 해주는 경우는 이제껏 거의 없었다. 어쩌면 현재 삼성에게는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김효범은 꽤나 잘 어울리는 지도자다.
자율농구, 엄격한 농구 등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뿌리부터 튼튼하게 다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러한 플랜도 함께 진행해 나가는게 최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봤을 때 이는 쉽지 않다. 삼성의 현 전력은 타팀들과 비교해 많이 뒤쳐진다.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는지라 갑작스런 반등은 기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김 감독대행 본인이 코트에서 보이는 열정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이다. ‘노련한 베테랑 감독을 영입해 당장 하위권 탈출부터 해야 된다’, ‘김 감독대행과 함께 인내심을 가지고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나가자’ 등 향후 삼성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윽박지르지 않고 소통을 통해 동기부여를 일으키고자 하는 김효범식 농구는 공중파 뉴스에서도 흥미롭게 다뤘을 정도로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지도법이다. 선수 시절부터 누구보다도 승부욕이 강한 인물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시켜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 해야 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명가로 전락해버린 삼성과 초보사령탑 김 감독대행이 긴 호흡으로 동반성장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그림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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