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오브 레전드'로 진행형 전설이 된 페이커
입력2024.11.09. 오후 1:00 기사원문
축구의 리오넬 메시나 농구의 마이클 조던 위상과 비교돼
21세기형 스포츠인 e스포츠, 대한민국 중심으로 움직여
대한민국 e스포츠 구단 T1이 통산 5번째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LoL e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11월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린 '2024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페이커' 이상혁의 맹활약에 힘입어 중국의 '빌리빌리 게이밍 드림캐스트'(BLG)를 세트 스코어 3대2로 꺾고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렸다.
T1은 2013년, 2015년, 2016년, 2023년에 이어 5번째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자, SK텔레콤 T1 시절을 포함해 역대 두 번째 2연패를 달성하며 왕조 재건에 성공했다. '제우스' 최우제, '오너' 문현준, '구마유시' 이민형, '케리아' 류민석 등 모든 선수가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함께 활약했지만 가장 빛난 선수는 역시 페이커였다.
11월3일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린 2024 롤드컵 결승전에서 T1 선수들이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가운데가 우승의 주역 페이커 ⓒ연합뉴스
LoL e스포츠의 월드컵 역대 최고의 팀이 된 T1
T1의 역대 우승을 모두 함께한 그는 미드 라이너 전에서 한껏 물오른 기량을 뽐내며 간판 스타이자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위기의 순간마다 팀을 구해 내며 큰 경기에서의 미친 존재감을 또다시 증명했다. 월드 챔피언십 통산 500킬 대기록까지 작성하며 결승전 MVP의 영예를 안았는데 이는 2016년에 이어 두 번째 MVP 수상이다.
사실 LoL e스포츠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이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저게 뭔데 이렇게들 호들갑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역사가 깊지 않은 탓에 세대별·개인별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을 비롯해 그저 놀이용 게임일 뿐이라는 편견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오늘날 e스포츠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너무 많이 커진 상태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생활 스포츠로 불릴 만큼 많은 국민이 즐기고 있으며 대학별로 관련 학과 역시 늘어나고 있다. 특히 LoL 월드 챔피언십은 '롤드컵(LOL+월드컵)'이라는 비공식 약칭이 생겨났을 정도로 위상이 크다. 월드 챔피언십은 LoL e스포츠 대회의 정점이라 불릴 정도로 가장 높은 위상을 가진 1년 결산 국제대회다.
그런 만큼 해당 대회에 진출만 하더라도 선수들의 다음 해 연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높은 상금, 네임밸류 상승까지 얻는 효과가 매우 크다. 아무리 리그 커리어가 좋아도 월드 챔피언십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정도다. 반대로 이런저런 경기에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선수도 월드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 역대급 레전드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중국 245억·북미 백지수표 연봉 제안도
T1은 무려 그러한 대회에서 5번이나 우승을 차지했으며 2연패를 역대 2번이나 달성했다. 연패를 달성한 팀은 대회 역사상 T1밖에 없다. 그러한 가운데 가장 빛난 선수가 바로 페이커였으니 전 세계 팬들 사이에서 그의 위상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축구의 리오넬 메시나 농구의 마이클 조던과 비교되는 이유인데, 종목 내 존재감만 놓고 따진다면 그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스포츠에 대해 잘 모르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페이커'라는 별칭은 낯설지 않다. 워낙 많은 매체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ESPN은 페이커를 봉준호, 손흥민, BTS와 함께 '한국의 엘리트4'라 칭했고, 중국의 시나닷컴은 여기에 김연아를 더해 '한국의 5대 국보'라 평가했을 정도다.
한 번만 우승해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회에서 다섯 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2013년 활동을 시작한 이후 11년간 정상의 자리를 고수했고, 해당 기간 동안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으며 강렬한 임팩트까지 선보였다. 수많은 매체, 관계자, 선수, 팬들로부터 이견조차 없이 'GOAT(역대 최고)'로 인정받은 유일무이한 선수다. 조던과 메시조차 GOAT를 놓고 다소 논쟁이 있지만 페이커는 그런 상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의 업적인 월드 챔피언십 5회 우승 외에도 준우승 2회, MSI 우승과 준우승 각 2회, LCK 우승 10회 및 준우승 6회 등 결승 경험이 차고 넘친다. 월드 챔피언십 최다승, 최다킬 달성자이기도 하며 LoL e스포츠 프로게이머 누적 상금 전 세계 1위에 올라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종종 방송에 출연하는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중국의 연봉 245억원 제안과 북미의 백지수표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때 아시아 각국의 유명 선수들이 페이커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고, 그가 공항을 통해 중국 항저우에 입국했을 때 현지 팬들이 몰려들어 공항이 마비되기도 했다. 이렇듯 페이커는 자신의 언행이 팬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스스로 인지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런 페이커 효과는 e스포츠와 게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적지 않게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e스포츠를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도 많다. 하지만 e스포츠는 뛰고 달리지만 않을 뿐 머리 못지않게 신체적인 능력도 중요한 종목이다. 특히 LoL 같은 경우 굉장히 빠른 템포로 경기가 진행되는지라 순간 판단능력, 작전 수행능력, 수읽기 등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동체시력이 매우 좋아야 한다. 이 종목 또한 나이를 먹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득하게 앉아 수를 겨루는 방식의 게임과는 다른 것이다.
한국e스포츠협회 대외협력팀 서은아 매니저는 "e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보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혼자 온라인 중계로 시청할 수 있고, 오프라인 경기장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응원하며 관람이 가능하다. 그 외에 선수들의 개인 스트리밍도 활성화되어 있어, 선수들의 연습과 일상을 좀 더 밀접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친밀도가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콘텐츠로서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예를 들어 게임적으로는 중계 기술의 발전, 그래픽 발달 등의 변화를 볼 수 있고, 물리적으로는 PC에서 모바일·VR로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활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e스포츠의 현재 위상은 축구·야구 등 인기 스포츠 종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소년층의 폭발적인 관심을 감안했을 때 미래 또한 밝다. 시장 규모나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21세기형 스포츠에 잘 들어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미래형 스포츠 최강국으로 대한민국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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