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KCC, 성실한 선수들의 힘!
기사입력 2022.12.30. 오후 03:43 최종수정 2022.12.30. 오후 03:43
전주 KCC이지스가 달라졌다. KCC는 29일 군산월명체육관서 있었던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홈경기에서 82-73으로 승리를 거뒀다. 올시즌 첫 4연승을 거둔 것을 비롯 5위 고양 캐롯을 0.5경기 차로 바짝 추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위권을 맴돌았던 것이 어색할만큼 상승세를 타고있는 모습이다. KCC팬들마저 어리둥절해 할 정도다. 테스트 중인 것으로 알려져있는 필리핀 선수 캘빈 에피스톨라(26‧180cm) 마저 안정적으로 연착륙할 경우 더 높은 순위도 욕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즌초 KCC가 연패 늪에 빠져 허덕일 때만해도 반등은 쉽지 않아 보였다. 비시즌 FA시장에서 대어급으로 꼽히던 이승현(30‧197cm)과 허웅(29‧185cm)을 한꺼번에 데려온 것은 분명 통큰 행보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선수층이 얇고 단신 가드 쪽에 필요 이상으로 선수가 몰려있는 등 포지션별 불균형이 심각했던지라 상위권 경쟁이 어려울 것이다는 의견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당초 계획했던 1옵션 외국인선수 영입에서도 문제가 생기며 어쩔 수 없이 론데 홀리스 제퍼슨(27‧198cm)을 데려오는 등 방향이 자꾸 어긋났다. 제퍼슨은 장점이 많은 선수이기는 했으나 평균 신장이 낮은 KCC입장에서는 스윙맨 스타일보다는 포스트를 지켜줄 빅맨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의 행보는 반전이라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놀라운 변화다. 아직 상위권팀들과 정면 승부를 벌일 만큼은 아니지만 전력에 안정감이 붙으면서 승부처만 되면 작아지던 모습은 상당 부분 털어낸 모습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달라진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당초부터 분위기는 나쁜 팀은 아니었지만 부진한 경기력과 패배가 쌓이면서 다소 처져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다르다. 선수단 내부에서부터 해보자는 열의가 끓어오르며 전체적인 투지가 업되었다는 분석이다. 시작은 팀 미팅부터였다. 부진한 성적에 다들 어깨가 쳐져있는 상황에서 허웅이 전창진 감독과 독대를 했고 이후 선수단 전체가 코칭스태프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팀 미팅으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정확하게 무슨 얘기가 오고갔는지는 공개되지않았으나 이후 거짓말처럼 경기력이 올라갔으며 선수들 역시 “팀 미팅후 분위기가 살아난 듯 싶다”고 밝히고 있다. 거기에 더해 시즌초 주춤했던 이승현, 라건아의 컨디션이 살아나면서 골밑에 힘이 붙는 등 두루두루 좋은 쪽으로 변화가 생겼다.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2008~09시즌 KCC
달라진 분위기가 경기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있는 모습은 흡사 2008~09시즌을 연상시킨다. 당시 KCC는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역대 최장신 센터 하승진을 뽑는 행운을 누리며 삽시간에 우승후보로 떠오른다. 이미 팀내에는 서장훈이라는 또 다른 빅맨이 있었고 외국인선수마저 감안했을 때 평균 신장 2m의 주전라인업도 기대해볼만하다는 말까지 터져나왔다. 적어도 높이만 놓고 본다면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하승진, 서장훈 둘다 기동성에 문제를 가지고있던 선수들이었던지라 ‘동시 기용이 가능할까?’, ‘출장시간 분배가 필요하다’는 등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여기에 대해 서장훈은 “선배로서 팀의 미래인 하승진을 키우는 조력자가 되겠다”고 말하며 팀을 둘러싼 이런저런 말을 일축시켰다.
팀내 최고참중 한명으로서 당연하면서도 모범적인 반응이었지만 서장훈을 아는 이들은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점을 표시했다. 누구보다도 개인 기록에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개인기록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까지 팀 승리를 선택하는 그림은 상상하기 쉽지않았다.
아니라다를까 서장훈은 시즌 초부터 마음이 급해지며 자신이 뱉은 말을 잠깐 조차 지키지 못했다. 후배 하승진과 출장시간을 나눠가지게 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코트에 나와있는 동안 한점이라도 더 넣기위해서 무리해서 슛을 난사하고 자신에게 패스를 하지않는 후배를 향해 습관적으로 내지르던 삿대질 횟수도 부쩍 늘어갔다.
팀이 이기고있어도 자신의 득점이 부족하다싶으면 벤치에서 짜증 섞인 표정과 행동을 보였다. 후배들은 가슴을 졸이며 서장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강성인 허재 감독이 이를 두고볼리 없었다. 서장훈을 달래고 어르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거침없이 호통을 치고 면박을 줬다. 그러자 서장훈은 마치 넋이 나간 표정으로 코트에서 걸어다니는 등 이전에는 하지않았던 모습을 반복했다. ‘태업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유다.
좋은 멤버를 가지고도 팀성적이 바닥을 치자 언론에서는 트레이드 등 팀 개편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늘어났는데 그때마다 허감독은 “구태여 억지로 변화를 주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장훈이도 팀 사정을 이해할 것이다”며 모두가 함께 가기를 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매경기 개인기록이 떨어지자 마음이 급해진 서장훈은 견디지 못했다.
자신이 먼저 공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이에 KCC는 전자랜드(현 한국가스공사)에 서장훈-김태환을 주고 강병현-정선규-조우현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KCC입장에서 ‘신의 한수’가 되고말았다. 전자랜드에서 자리를 못잡고있던 강병현이 공수에 걸쳐 키플레이어로 발돋움하면서 신명호, 임재현, 강병현 등으로 대표되던 ‘들개군단’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과 베테랑 추승균은 하승진과 절묘한 호흡을 자랑했고 팀 플레이가 좋았던 외국인선수 마이카 브랜드까지 합세하며 예상치못했던 우승까지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될 것은 ‘분위기 반전’이다. 선수간 이름 값을 떠나 서장훈보다는 강병현이 밸런스적인 측면에서 더 잘맞는 조각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KCC가 하위권에서부터 무섭게 치고올라가 우승까지 차지하게된 배경에는 트레이드 이후 확 달라진 분위기도 한몫 했다. 보통 시즌 중 빅딜이 일어나게되면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해지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KCC처럼 분위기가 좋지 못했던 팀은 더욱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달랐다.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좋아지고 벤치에 활기가 돌았다.
강병현은 플레이 자체가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장신가드라는 이점에 더해 엄청난 활동량을 통해 팀의 에너지 레벨을 올려주는 타입이었다. 딱 KCC에 필요한 조각이었다. 정선규는 출장시간은 많지 않았으나 슛이 원체 정확했던지라 짧은 순간 코트에 나서도 고감도 외곽슛을 적중시켜주는 등 높은 가성비를 보여줬다.
인상적인 선수는 조우현이었다. 당시 조우현은 잦은 부상과 그로인한 컨디션 난조로 인해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조우현은 KCC팬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중 한명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한참을 쉬던 조우현이 가비지타임에 코트에 나서자 KCC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3점슛으로 시즌 첫 득점을 올리자 관중석이 떠나갈 듯 함성이 터져나왔다.
당사자인 조우현이 머쓱해하는 가운데 벤치에 있던 KCC 동료들까지 일어나 박수를 쳤다. 신기한 일이었다.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고 타팀에서 트레이드 되어온 말년 노장에게 왜 그렇게 모두가 열광하는가 의아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팬들이 조우현에게 먼저 마음을 열게 된 것은 한때를 풍미했던 스타답지 않은 겸손함과 동료들을 챙기는 자상함이 있어 가능했다. 팬들은 연패가 계속되던 시즌 초 성적보다는 좋지 않은 팀 분위기에 실망을 거듭했다. 경기에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파이팅을 찾아볼 수 없는 선수들의 표정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벤치 분위기는 ‘과연 이 팀에 미래가 있는 것일까’라는 불안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트레이드후 KCC의 벤치분위기는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팀 내 젊은 선수들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더불어 조우현의 역할 역시 적지 않았다는 평가다. 비록 경기력에서는 큰 보탬이 되지못했으나 벤치에서만큼은 마치 신인 때처럼 파이팅을 외치며 침체된 KCC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큰 몫을 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그가 자존심을 버린 채 동료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고함을 지르며 독려하고 작전타임에 집중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경험이 많지 않은 후배들에게 쉴 새 없이 노하우를 알려주며 또 다른 코치 역할을 자청했고, 땀을 흘리며 벤치로 들어오는 동료들에게 박수를 치며 기운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의 이런 진심은 KCC팬들에게 닿았고, 결국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랑을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팀 스포츠에서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느끼게해준 시즌이었다.
허웅, 이승현, 정창영…, 성실한 주축들이 이끌어가는 좋은 분위기
최근의 KCC가 더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트레이드 등 극약 처방을 쓰지않고도 새멤버와 기존 멤버가 스스로 자각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부분이다. 미팅의 주역 허웅은 KCC에서는 새식구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분위기 쇄신에 앞장섰다. 리그 최고 인기스타로서 자신을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있음에도 농구에만 집중하며 주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승현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희생’, ‘헌신’, ‘팀 플레이’ 등의 말이 따라붙는다. 기량 자체도 훌륭하지만 개인 기록보다는 늘 팀 성적을 우선으로두며 고참임에도 궂은일 위주로 플레이한다. 리그 많은 지도자들이 이승현을 좋아하는 이유이며 많은 면에서 후배들이 믿고 배울만한 선배다는 평가다.
정창영은 KCC의 살림꾼이다. LG 시절만해도 크게 빛을 보지못하다가 KCC에서 와서 이른바 확 터졌다. 주 포지션은 가드지만 상황에 따라 포워드까지 소화하며 전천후로 팀에 기여하는 모습이 한창때 강병현을 연상케한다. 기본적으로 수비 등 궂은 일에 적극적이며 거기에 더해 공격에서도 내외곽을 오가며 지원사격을 잘해주는 편이다. 코트 안팎에서 워낙 성실한지라 코칭스태프나 동료들 사이에서도 신뢰가 높다.
이렇듯 KCC는 이런저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팀내 주축 전력을 이루고있는 고참급들이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라 분위기적인 측면에서 빠른 안정세가 가능했다는 평가다. 다음 시즌 돌아올 송교창 또한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미래 역시 긍정적으로 기대해볼 수 있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박상혁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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