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부터 이정현까지…, 다재다능한 토끼띠
기사입력 2023.01.02. 오전 07:31 최종수정 2023.01.02. 오전 07:31
2023년 ‘계묘년(癸卯年)’ 토끼 해가 밝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띠에 민감하다. 때문에 해가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12간지의 주인공은 적어도 해당 년도에서 만큼은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각종 운세, 풍수부터 다양한 캐릭터 등 최근에는 그 영역이 더욱 넓어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KBL도 무관하지는 않다. 토끼띠 선수들은 그간 리그에 적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신인 드래프트 첫 참가자들은 94학번들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1년 유급을 선택한 74년생이나 빠른 76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중심은 1975년생 토끼띠였다. 75년생들은 첫 신인 드래프트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수학능력 시험 첫세대, 졸업반 시절 IMF 발생 등 국가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 마다 꼭 선두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미 ‘처음’이라는 단어는 익숙해져있는 상태였다.
띠로 봤을 때 토끼는 앞뒤로 강력한 존재에 갇혀있다. 1년 위는 백수의 왕 호랑이이며, 1년밑은 전설 속의 존재 용이다. 어찌보면 기에 눌려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 아닌가 우려될 정도다. 하지만 '토끼전' 등 조상들의 해학과 삶의 태도가 잘 배어있는 여러 작품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토끼는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다. 영특하고 재빠른 속성을 가지고있어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재주가 넘친다.
75년생 토끼띠의 선두주자는 현주엽과 신기성이다. 연세대 독수리 5형제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 대항마로 꼽히던 고려대는 94학번인 둘이 합류하고서야 완전체가 된다. 현주엽은 당시 ‘골리앗’으로 불리며 생태계 파괴 몬스터로 불렸던 서장훈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다. 서장훈과 대적하기에 신장(195cm)은 크지 않았지만 듬직한 체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파워와 체중대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운동신경을 앞세워 자신보다 큰 상대를 맞아서도 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두가 겁을 집어먹던 서장훈을 상대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서장훈에게 아쉬웠던 인기(?)까지 많았다. 연세대 최고 인기스타가 이상민, 우지원 등이었다면 고려대에서는 단연 현주엽이었다. 연세대 반대급부로 남성팬이 유독 많던 고대였지만 현주엽만큼은 여학생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다.
파워, 체중 등으로 유명해서 그렇지 현주엽은 대단한 테크니션이었다. 포지션은 파워포워드였지만 내외곽을 넘나드는 공격력에 패싱능력도 수준급이었던지라 3번까지 소화가 가능했다. 프로 무대서도 잘하기는 했으나 잦은 부상으로인해 기대치만큼은 보여주지 못한 점을 감안했을 때 진작 방향성을 정해서 스몰포워드로 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재능적인 측면에서 역대급이었던 선수다.
고려대 베스트5의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신기성은 대학 시절에는 존재감이 높지않았다. 나머지 4인이 워낙 공격력이 좋은지라 도우미 역할에 주로 전념했기 때문이다. 프로에서는 달랐다. ‘슛이 저렇게 좋았나?’싶을 정도로 슈터 뺨치는 슈팅 능력을 선보였으며 스피드 역시 1번 중에서도 최상급이었던지라 별명이 ‘총알탄 사나이’였다. 거기에 볼핸들링, 리딩 등 고르게 잘하던 토탈 패키치 유형의 야전사령관이었다. 당시에는 공격형 가드로 분류됐으나 지금의 시점으로보면 공격력도 뛰어났던 퓨어 포인트가드로 봐도 무리가 없다.
그 외…, 75년생 중에서는 기량 혹은 개성 등에서 인상적인 선수가 꽤 많았다. 김택훈은 부상만 아니었다면 프로에서 꽤나 터프한 공수겸장 4번으로 활약했을 공산이 크고 윤영필, 이은호 등은 토종 빅맨으로서 궂은 일을 잘해주는 이른바 감독들이 좋아하던 선수였다. 고 표명일은 여러팀을 오라며 식스맨으로서 쏠쏠한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박재일, 정락영은 암흑기 동양 오리온스와 함께하던 선수들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예능 프로를 통해 은퇴후 더 유명해진 ‘박장법사’ 박도경도 동 나이대 선수였다.
87년생 토끼띠를 대표하는 선수는 단연 이정현이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박찬희에게 밀려 2인자 이미지가 강했으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며 어느 순간 국내탑 2번으로 우뚝섰다. 박찬희같은 경우 포인트가드로서의 역량에 빼어난 수비능력까지 겸비해 ‘KBL판 게리 페이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슈팅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며 장점이 묻혀버리는 아픔에 울어야 했다.
반면 신인시절부터 내외곽에서 다부진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던 이정현은 가드치고 빠르지못한 기동성을 지적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정현에게 그런 부분은 큰 장애물이 되지못했다. 기본적으로 돌파에 능하면서도 3점슛, 미들슛 등 거리를 가리지않는 슈팅능력을 갖췄으며 시야, 보조리딩, 이대이 게임 등 높은 BQ를 앞세운 무수한 레퍼토리로 오랜시간 리그에서 롱런하고 있다. 연속출장경기 기록 등은 앞으로도 꽤 오랜시간 넘보기 힘든 영역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99년생 토끼띠 선두주자 역시 이정현이다. 동명이인으로 보통 ‘작은 이정현’으로 불리고있지만 호남 출신, 연세대 출신, 슈팅가드 및 다재다능한 플레이 스타일까지 87년생 이정현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KBL 슈팅가드 커리어에서 1, 2위를 다툴 큰 이정현을 제치는 선수가 있다면 작은 이정현이 될 것이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만큼 재능적인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모습이다.
이정현과 99년생 최고를 놓고 자웅을 겨루고있는 선수로는 ‘베이비 헐크’ 하윤기가 있다. 최근 2m이상 장신 유망주들이 슈터, 스윙맨 등으로 빠지면서 가뜩이나 빈약한 빅맨층에 바닥이 보이고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여전히 오세근, 김종규 등에 의존해야하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 가운데 모처럼 등장한 빅맨 기대주 하윤기는 리그는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부상 등 큰 변수만 없다면 국내 빅맨계보를 이어감은 물론 이정현과도 선의의 라이벌로 치열한 경쟁이 기대된다.
75년생이야 이제는 지도자로 봐야하는 나이대지만 87년생, 99년생은 여전히 리그에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87년생은 베테랑의 힘을 보여주고 있으며 99년생은 현재이자 미래이다. 토끼의 기운이 가득한 계묘년, 이들 토끼띠 플레이어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이청하 기자, 유용우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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