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1980년대생들, 2세대는 살아있다
기사입력 2023.01.03. 오후 02:43 최종수정 2023.01.03. 오후 02:43
세대, 공통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의식이나 문화를 함께 느끼는 일정 폭의 연령층을 뜻한다. 보통 10~20년을 주기로 구분되어진다. 모 포털사이트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웹툰 <외모지상주의>에서는 특정 인물이나 단체 등을 각자가 활약했던 시기에 따라 1세대, 2세대 등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의 주요 인물들이 2세대로 구분지어지는 가운데 이전에 활보했던 1세대가 선배로 나오고있으며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명성 등을 통해 회자되고있는 이른바 아버지 때는 0세대로 표현된다.
스포츠쪽에서도 ‘00의 시대’ 등의 표현으로 세대를 나누는 방식이 종종 사용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를 KBL에 대입해보면 프로농구가 만들어지고 신인드래프트가 시작됐던 시기에 함께했던 1970년대생을 1세대, 이후 활약을 이어간 1980년대, 1990년대생이 2세대, 3세대 등으로 분류된다. 2000년대생도 등장하고있지만 아직은 시작단계일뿐이다. 0세대는 프로화 이전에 주로 커리어를 쌓아간 선수들을 생각하면 되겠다.
현재 리그를 이끌어가는 주축 선수들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에 해당하는 3세대들이라 할수있다. 현역 최고를 넘어 역대급으로 도약중인 특급 슈터 전성현(1991년생‧188.6cm),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KBL 아이돌 허웅(1993년생‧183.8cm), 허훈(1995년생‧181cm) 형제, 한국농구계 장신포워드 라인의 중심축 문성곤(1993년생‧195.6cm), 최준용(1994년생‧200.2cm), 송교창(1996년생‧201.3cm), 양홍석(1997년생‧195cm), 국가대표 에이스 계보를 이을 기대주 이정현(1999년생‧187cm) 등이 대표적이다.
3세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포지션 파괴다. 기본적인 가드, 포워드, 빅맨은 가져가고있지만 과거 선배들처럼 디테일하게 1~5번 포지션이 나눠지지 않는다. 듀얼가드의 득세같은 경우 주전급 퓨어 포인트가드가 씨가 마른 영향도 있겠지만 2m에 육박하는 스윙맨들이 늘어난 부분은 분명 예전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단순히 키가 큰데 외곽까지 나와서 3점슛을 쏘고 그런 수준이 아니다. 송교창은 신장 대비 엄청난 스피드를 갖추고 있다. 당초부터 빅맨이 아닌 스윙맨의 적성을 살려 성장한 케이스인지라 2~4번 수비가 가능하며 어떤 장신 조합에도 공존이 가능한 스타일이다. 소속팀 KCC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도 대표팀에서는 궂은 일에 능한 살림꾼 역할을 잘해준 부분이 이를 입증한다.
최준용은 역대 어떤 선수보다도 유니크한 플레이어다. 국내 기준 빅맨의 사이즈임에도 스윙맨처럼 움직이며 가드의 섬세한 테크닉까지 겸비했다. 한국농구의 숙원인 장신화의 키플레이어같은 존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교창, 최준용같은 선수가 있기에 3세대를 ‘포지션 파괴의 세대’,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의 세대’로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렇듯 국내농구의 중심이 3세대로 굳어져가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주연 혹은 핵심 조연 자리를 내놓지 않겠다는 2세대 선수들도 있다. 이미 상당수는 한창때 기량을 잃고 벤치에서 잠깐씩 뛰거나 아예 은퇴한 케이스도 적지않지만 3세대와 비교해 경쟁력을 잃지않고 여전한 노장파워를 과시하는 선수들도 있다.
기량을 유지하면서 롱런하는 선수의 상당수는 이른바 ‘BQ’가 뛰어난 케이스가 대다수다. 아무래도 한창 때에 비해 운동능력에서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라 특유의 노련미나 게임흐름을 읽고 조절하는 플레이 등에서 메울 필요가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또다시 FA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정현(1987년생‧190.3cm)과 ‘00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 제목을 떠올리게하는 함지훈(1984년생‧197.4cm) 그리고 이름이 나올 때마다 ‘지금도 뛰고있어?’라는 말과 함께 주변을 깜짝 놀라게하고 있는 40대 기수 김동욱(1981년생‧193.5cm) 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같이 특유의 농구 지능을 인정받고있는 영리한 플레이어들로 꼽힌다. 이정현은 그렇다치더라도 함지훈, 김동욱은 나이적인 측면에서는 1세대에도 가까운 선수들이다. 폭발적으로 빠르지도 그렇다고 운동능력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경기를 읽고 자신의 장점을 녹여내는데 능하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듯 하면서도 빠른 상대의 타이밍을 무너뜨릴줄 알고 상황별로 공격을 해야할지 패스를 해야할지 신속한 판단에 능하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농구의 길을 안다’에 잘 해당되는 베테랑들이라 할 수 있다.
웹툰 속에서 마태수는 현 세대 후배들과 자신들이 활약했던 당시를 비교해 “지금 세대는 약해,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우리는 전쟁터였다. 너희 세대랑은 무게가 다르다”라고 표현했으며 이지훈 또한 “낭만따윈 찾아보기 힘들었던 전쟁의 세대다”고 말했다. 어느 세대가 더 강할지는 나중에 평가해야할 문제지만 그만큼 자신이 뛰어온 세대에 대한 자부심이나 추억 등을 강하게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세대들은 아직 농구대잔치의 여운이 끝나지않은 1세대와 새로운 트랜드에 완전히 적응한 3세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만큼 변화된 농구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세대다. 영리하고 적응력이 뛰어나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수가 없다. 신체능력은 다운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내공을 바탕으로 KBL의 정글을 호령하고있는 모습이다.
2세대 중에서 젊은 축에 속해서일까? SK 돌격대장 김선형(1988년생‧187cm)과 KCC 이지스함 일등 항해사 정창영(1988년생‧193cm)은 코트에서 보여지는 신체능력에서도 3세대에 별반 뒤지지않는다. 김선형의 트레이드 마크는 속공시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리며 확률높은 림어택에 능하다는 부분이다. 특히 중요한 클러치 상황에서의 집중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중요한 순간 선명한 모습을 보여준다. 남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도 한치의 망설임없이 과감하게 림을 공략한다.
활동량, 적극성 등을 무기로하는 대부분 선수들은 20대 중반 정도가 전성기다. 아무래도 신체능력 등에서 가장 좋을 때이기 때문인데 정창영은 오히려 나이먹고 더 부지런해지고 활동량이 높아진 다소 특이한 케이스다. LG시절에는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고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KCC에서 역할을 제대로 찾고 자신감까지 얻으면서 어느 순간 리그 정상급 살림꾼으로 발돋움했다. 나이가 있더라도 얼마든지 20대 못지않게 뛰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케이스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윤민호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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