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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러는 실전에 약하다고? 레스너는 달랐다

격투기/UFC

by 멍뭉큐라덕션 2024. 12. 1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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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러는 실전에 약하다고? 레스너는 달랐다

입력2024.12.19. 오후 12:00 기사원문

[압박형 그래플러를 말한다 4] '인간 화물차' 브록 레스너

브록 레스너는 '인간 화물차'로 불렸다.
ⓒ 브록 레스너 페이스북
 

'압박형 그래플러는 인기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팩트만 놓고 본다면 맞다. 비슷한 조건에서 봤을 때 누워서 주로 싸우는 그래플러보다는 서서 펀치와 킥을 내는 스트라이커 유형이 훨씬 인기가 좋다. 프라이드 시절 '불꽃 하이킥'이라는 닉네임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미르코 크로캅이 대표적 예다.

당시 크로캅은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함께 헤비급 빅3로 불렸는데 성적은 셋 중 가장 떨어졌지만 인기는 제일 높았다. 무패 챔피언인 표도르 또한 인기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크로캅은 번번이 패배를 기록함에도 상품성에서는 단체 최고로 평가받았다. 라이트헤비급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선수는 '도끼살인마' 반더레이 실바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매니아 팬들 같은 경우 그라운드에서의 다양한 기술 공방전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일반 팬들은 다르다. 당장 눈앞에서 화끈하게 치고 받는 게 더 임팩트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재 UFC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성적만 놓고 보면 대단한 선수가 의외로 관심을 적게 받는 케이스가 한둘이 아니다.

프라이드 몰락 후 UFC가 선수들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끝까지 받기를 거부한 선수가 '아부다비의 대마왕' 히카르도 아로나다. 기량만큼은 어떤 상위클래스 선수와 붙어도 손색 없었지만 압박형 그래플링 위주인지라 구태여 데려올 필요를 못 느꼈다. 아니 외려 잘나가는 인기 선수를 꺾어버리는 사고를 칠까봐 더 시선을 안 줬다는 후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티토 오티즈, 차엘 소넨 같은 경우 지루하기 그지없는 파이팅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기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압박형 그래플러라는 단점(?)을 지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쉴새없이 옥타곤밖에서 선수들과 설전을 주고받는 등 악동 이미지로 자신을 꾸몄다. 싸우는 방식은 바꿀 수 없으니 자신 자체를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 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로는 '인간 화물차' 브록 레스너(47·미국)가 있다. 오티즈, 소넨처럼 캐릭터도 개성이 넘쳤지만 심지어 파이팅 스타일까지도 많은 흥미를 끌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압박형 그래플러처럼 대놓고 태클하고 상위포지션에서 압박하는 패턴이었지만, 그가 하면 달랐다. 옥타곤 밖에서도, 안에서도 보는 재미가 아주 높았던 선수다.

스타성과 기량을 겸비한 최종 보스형 악역 프로레슬러


프로레슬러 시절의 브록 레스너.
ⓒ 브록 레스너 페이스북
 

프로레슬러 레스너가 종합격투기로 전향한다고 할 때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프로레슬링은 눈으로 보이는 것 만큼 강하지 않다', '프로레슬링은 실전과 다르다'는 말이 오가던 가운데 세계 최고 프로레슬링 단체 WWE, 그곳에서도 최고의 상품성을 자랑하던 특급 슈퍼스타가 무대를 옮겨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레스너는 외모에서부터 위협적(?)이었다. 188cm-140kg의 거대한 사이즈, 강인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넓은 가슴근육이 유달리 돋보였던지라 한눈에 봐도 강하다는 느낌을 줬다. '로랜드 고릴라'라는 애칭이 따라붙었을 정도다. 대학 시절 그는 아마추어 레슬링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유망주였다.

2000년 NCAA 디비전 1 헤비급 레슬링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 2년 연속 올 아메리칸 선정, 총 4회 올 아메리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대학 통산 성적은 106승 5패다. 대학 졸업 후 WWF와 계약을 맺고 산하단체인 OVW에 보내져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짧은 시간 내에 시선을 잡아끌며 금세 스타로 떠오른다. 데뷔초부터 체격, 운동신경, 경기운영 등 모든 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일단 경기력이 엄청났다. 단체 내 최고 거인 중 한명인 빅 쇼(213cm)를 힘으로 뽑아서 오버헤드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를 시전한다든지, 지게차 지붕에서 상당히 떨어진 링까지 바디 프레스를 깔끔하게 성공시키는 등 온갖 명장면을 연출해냈다. 보통 거대한 사이즈의 선수들이 하기 어려운 고난도 하이플레이까지 거침없이 구사했다.

데뷔 5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당시 최고 선수로 꼽히던 커트 앵글과 스맥다운 위클리 쇼에서 60분 아이언맨 매치를 치르기도 했다. 대표적인 피니쉬 무브로는 어깨에 상대방을 짊어지고 회전시켜 떨어트리는 기술인 F-5가 있다. 들어 올려서 메치는 기술은 프로레슬러들에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레스너는 동선과 임팩트가 확실히 달랐던지라 보는 이들에게 쾌감을 줬다.

워낙 힘이 좋은지라 자신보다 훨씬 큰 초중량급 선수들에게도 거침없이 기술을 사용했다. 언더테이커, 트리플 H, 빌 골드버그, 존 시나, 빅 쇼, 케인, AJ 스타일스, 사모아 조, 대니얼 브라이언 등이 해당 기술에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한창때 레스너의 괴물스러움을 나타내주는 기술은 사실 따로 있다. F-5의 경우 힘과 유연성이 돋보인다. 반면 탑 로프에서 점프하면서 270도를 회전하여 바디 프레스를 날리는 슈팅스타 프레스는 '저 덩치로 저게 가능해?'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그야말로 신체 능력의 절정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레스너는 이같은 능력을 앞세워 WWE 챔피언 7회, WWE 유니버설 챔피언 3회, 2002년 킹 오브 더 링 우승, 2003년 로얄럼블 우승, 2022년 남성 로얄럼블 우승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었다. 지금도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최종 보스급 악역 레슬러로 회자되고 있다.

압도적 임팩트 보여준 '화물차 태클'


프로레슬링계의 슈퍼스타 브록 레스너는 UFC에서도 헤비급챔피언에 올랐다.
ⓒ UFC

레스너의 종합격투기 진출은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다. MMA 첫 데뷔전을 2007년 6월 K-1 다이너마이트에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과 벌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매치업이 발표되기 무섭게 괴수 매치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최홍만이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며 빅매치는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부상 후 휴식중이던 김민수가 급하게 대타로 투입되어 경기를 치렀고 해당 경기에서 레스너가 승리했다. 이후 2008년 2월 UFC에 데뷔한 레스너는 10대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프랭크 미어를 상대로 첫 경기를 가졌다. 레스너는 테이크 다운에 이은 파운딩으로 뛰어난 운동 신경을 과시했지만 심판의 석연치 않은 후두부 가격 판정으로 스탠딩 상황으로 돌아갔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어가 니 바를 잡아내 탭을 치고 말았다. 레스너의 1라운드 서브미션 패였다.

하지만 레스너의 파워와 레슬링 스킬은 범상치 않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를 입증하듯 다음 경기에서 '텍사스 광마'로 불리던 히스 헤링을 전방위로 압도하며 판정승을 거뒀다. 이후 랜디 커투어와 타이틀매치가 잡혔고 우월한 힘의 우세를 앞세워 승리를 거두고 옥타곤 입성 3경기 만에 챔피언에 등극한다.

너무 빨리 기회를 잡았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챔피언을 잡았고 무엇보다 높은 상품성은 주최 측에서도 큰 기대를 거는 부분이었다. 이후 미어를 상대로 리벤지 매치를 성공했으며 '해머펀치'로 명성이 높던 셰인 카윈에게마저 역전승을 거두며 2차 방어전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낸다.

헤비급 선수층이 커투어 시절만 같았어도 레스너는 롱런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쉽게도(레스너 입장에서) 당시 헤비급은 진화하던 단계였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력한 선수들이 속속 등장했다. 대표적인 파이터가 '70억분의 1'로 불리던 케인 벨라스케즈였다. 체구는 작지만 내구성, 스킬 등 다양한 부분에서 괴물로 불렸다.

이를 의식한 듯 레스너 또한 3차 방어전에서 그를 상대로 초반부터 맹공을 펼쳤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벨라스케즈의 경기운영에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TKO패로 무너지고 만다. 이후 '데몰리션맨'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도 타격에서의 레벨차를 경험하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5년여가 지나 마크 헌트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며 복귀전의 신호탄을 쏘아올리는 듯 싶었으나 금지약물 적발에 걸리며 벌금과 1년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렇게 옥타곤을 떠나고 말았다.

'닥돌(닥치고 돌진)'-테이크다운 등 레스너의 플레이 스타일은 단순했다. 하지만 거대한 체구에도 놀라운 순발력으로 치고 들어가는 이른바 '화물차 태클'은 보는 이들에게 어지간한 타격가 이상가는 재미를 선사했다. 레스너가 했기에 특별했다고 보는 게 맞다. 종합격투기 헤비급을 통틀어 보기드문 슈퍼스타형 캐릭터였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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