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이현중, 농구판 ‘코리안 좀비’될까?
기사입력 2023.01.21. 오전 09:01 최종수정 2023.01.21. 오전 09:01
[이현중을 말한다⑦] 시련에도 흔들림없는 멘탈
국내 2호 NBA리거를 꿈꾸는 이현중(23·202㎝)이 지난 15일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6개월의 긴 재활 기간을 거쳐 몸과 마음이 더 강해진 상태로 NBA에 재도전한다. 지난 시즌은 그에게 시련의 해였다. 데이비슨대 소속으로 ‘3월의 광란’으로 불리는 전미대학스포츠협회(NCAA) 농구 64강 토너먼트 무대를 밟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그는 졸업 대신 중퇴를 선택하고 야심차게 NBA 무대에 도전했다.
안정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장신 슈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필요한 팀으로의 지명도 예상됐다. 이현중 본인 또한 여러팀의 워크아웃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했다. 하지만 뜻밖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6월 샬럿 호네츠의 워크아웃 도중 왼쪽 발등뼈와 인대를 다쳤고 수술 후 수개월간 재활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내려졌다.
‘사람은 진짜 모습은 위기가 닥쳤을 때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이현중에게도 적용됐다. 실망과 허탈감이 밀어닥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까지 고생한 것이 너무 억울하다’며 닥친 현실을 비관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위기를 풀어나갈까?’에 집중했다. 모친 성정아 WKBL 재정위원장을 비롯해 주변 지인들마저 감탄한 부분이다.
2017년 6월 중국 항저우에서 있었던 ‘나이키와 함께 하는 제4회 아시아 태평양 팀 캠프’ 직후 인연을 쌓은 이래 꾸준하게 이현중의 몸 관리를 돕고 있는 퍼포먼스 향상 전문가 강성우 박사와 함께 재활 및 보강운동에 집중했다. "몸쓰는 법을 다시 배운것 같다. 근육증량을 늘렸으면서도 스피드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밝혔을 만큼 개인적으로도 만족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있다.
LA에 가서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를 만나 완쾌 확인을 받고 본격적으로 NBA 재도전을 할 예정인데 인상적인 것은 좀비 발언이었다. 이현중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항상 좋지만은 않겠지만 넘어지면 좀비처럼 일어나고 또 일어나겠다"고 말했다.
공포물 단골 소재 중 하나인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라는 뜻답게 상처투성이 몸으로 기괴하게 걸어다니는 괴기캐릭터다. 영화 속에서 음침함을 담당하는 등 단어 자체는 별로 좋지않지만 스포츠 쪽에서의 의미는 또 다르다. 치명상을 입고 쓰러뜨렸다 싶은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기 일쑤인 좀비처럼 근성과 투지가 남다른 선수를 가리킨다. 상대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하면서도 두려운 존재다. 좀비를 언급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현중이 강한 마음을 먹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내 스포츠 스타중 ‘좀비’라는 별명으로 유명세를 떨치고있는 인물로는 UFC 페더급에서 활약중인 '코리안좀비' 정찬성(35‧코리안좀비MMA)을 첫손에 꼽을수 있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김동현이 더 앞설 수도 있겠지만 이는 UFC파이터로서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 탓이 크다. UFC에서의 업적, 해외에서의 인지도만 놓고 봤을 때 정찬성은 역대 코리안 파이터중 압도적 1위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무대 진출 전까지만해도 정찬성을 아는 이들은 많지않았다. 해외는 커녕 국내에서의 인지도도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WEC에서 있었던 레너드 가르시아와의 혈투를 통해 하룻밤만에 전 세계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렸다. 경기내내 미친 듯이 치고받고 구르고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아쉬운 판정패에도 불구하고 해외 격투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것은 물론 UFC 데이나 화이트 대표마저 “이제부터 정찬성의 팬이다”며 공개적으로 선언했을 정도다. ‘코리안좀비’라는 별명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그뒤 정찬성이 벼락 스타로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막 상승세를 타려고하던 시점에서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가르시아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덕에 WEC 51대회서 메인매치에 포함되어 조지 루프와 대결을 벌였는데 2라운드 초반 과감한 공세를 펼치다 상대의 원투, 하이킥 콤비네이션에 생애 첫 KO패를 당하고 만다.
어떻게 자신이 쓰러졌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않을 정도였던지라 당시 진지하게 은퇴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많은 고심 끝에 케이지로 돌아온 정찬성은 그뒤 진짜 좀비가 되어있었다. 이전까지 상대 공격에 근성으로 맞불을 놓았다면 UFC무대에서는 강약조절에 신경을 썼고 상대의 파이팅 스타일을 분석해가면서 전략적으로 승부에 임했다.
당시 패배를 통해 정신적으로 크게 성숙한 정찬성은 이후 UFC무대에서 쟁쟁한 스타로서의 행보를 밟아나갔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가르시아에게 UFC 사상 최초의 트위스터 서브미션승으로 리벤지, 직전 경기에서 타이틀매치까지 경험했던 마크 호미닉을 상대로한 7초 넉아웃 승리, 어깨 회전근 부상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스틴 포이리에와의 신성 대결에서 완승, 까다로운 상위 랭커 헤나토 모이카노를 상대로한 58초만의 승리 등 이긴 경기마다 드라마를 썼다.
물론 승부의 세계가 그렇듯 기분 좋은 승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첫번째 타이틀매치 당시 챔피언 조제 알도에게 4라운드에서 흐름을 가져가려던 찰나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는 악재에 울었고, 2018년 야이르 로드리게스와의 승부에서는 경기내내 유리하게 흐름을 끌고가고도 종료 1초를 남겨놓고 팔꿈치 공격을 허용해 역전 실신패 당하고 말았다. 그런 순간에서도 정찬성은 다음 경기에서 더욱 심기일전해서 돌아오고는 했다.
정찬성의 별명은 잠시도 쉬지않고 전진스탭을 밟으며 상대를 질려버리게 한데서 붙여졌다. 하지만 이후에는 파이팅 스타일에 변화가 생겼고 외려 갖은 시련이 찾아와도 굴하지않고 일어서는 모습이 더 좀비같다는 의견도 많다. 종목은 다르지만 이현중에게서도 정찬성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어느 정도 앞날이 보장된 국내에서의 엘리트 코스를 포기하고 호주 NBA 글로벌 아카데미 입학,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디비전Ⅰ소속 대학팀에서의 활약, 그리고 NBA입성을 위해 리그 경기 이상으로 치열하게 치러냈던 워크 아웃까지…, 대다수 한국 농구인들이 가보지못한 길을 외롭지만 씩씩하게 걷고 있다. 재능과 노력에 더해 끊임없는 멘탈 다지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행보다.
그 과정에서 치명적인 부상 악재로 인해 오랜시간 계획했던 부분이 박살나버렸지만 더 나은 과정을 위한 수순으로 생각하고 재도약을 준비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정찬성이 다져놓은 길이 다른 코리안 파이터들에게 의미깊은 이정표가 됐듯이 이현중의 지금 행보 또한 차후 NBA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재도전을 선언한 농구판 ‘코리안 좀비’ 이현중이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UFC, 유용우 기자, 이현중 어머니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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