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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무너진 현실판 서태웅과 천재 옥동자

농구/NBA

by 멍뭉큐라덕션 2023. 2. 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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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무너진 현실판 서태웅과 천재 옥동자

기사입력 2023.02.07. 오전 09:01 최종수정 2023.02.07. 오전 09:01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돌아보기⑥] 2003년 드래프트

 

2003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연세대의 반격이 시작되는 듯 했다. 직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없이 2라운드 1명(박재성)만을 배출한채 자존심을 구겼던 연세대는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1라운드 3명(김동우, 전병석, 박광재), 2라운드 2명(박정완, 윤호진), 3라운드 1명(임정훈) 등 무려 6명을 배출하며 정통 농구 명문의 입지를 보여줬다.

고려대 또한 1라운드 2명(김두현, 오용준), 2라운드 2명(이근석, 이현호) 등 4명이 뽑히기는 했으나 김두현(1라운드 9순위)이 가장 높은 순번이었을 정도로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살짝 빗겨갔다. 이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 안에 3명을 배출하는 괴력을 보여줬던 성균관대는 2순위로 옥범준이 선발되며 여전한 신흥 농구 명가임을 자랑했다.

2003년은 역대급 드래프트중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아쉬움만 가득 남은 해로 남고 말았다. ‘연세대 서태웅’ 김동우(43‧196cm)는 신입생 시절부터 김주성에 버금가는 선수가 될 것이다는 기대를 모았던 선수다. 얼리 드래프트로 참여한 ‘옥동자’ 옥범준(41‧174cm) 또한 '제2의 김승현'으로 기대를 모았다. 워낙 아마시절 보여준게 많았던지라 ‘부진해도 평균 이상은 해줄 선수들이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부상으로 기대치에 한참 못미치는 커리어를 남기고 말았다.

오히려 실속은 고려대 출신을 뽑은 팀들이 가져갔다. 1라운드 10순위 오용준(41‧193cm)과 2라운드 8순위 이현호(42‧192cm)는 폭발적이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고 듬직한 플레이를 앞세워 오랜시간 KBL에서 활약하며 롱런 플레이어로서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둘다 1, 2순위 김동우, 옥범준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경기를 뛰었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것이 아닌, 오래가는 놈이 강한 것이다’는 모 영화 제목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박상률(41‧178cm)도 빼놓을 수 없다. 해당 드래프트를 언급할 때 빠지지않고 언급되는 이름중 하나다. 프로 무대서 주로 백업 포인트가드로 뛰었던 단신 1번이었지만 다른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배경이 두고두고 회자되고는 했다. 대학 2부리그 출신으로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9시즌동안 270경기를 뛰었다.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중 박상률보다 많은 경기를 뛴 선수는 5명에 불과하다. 비슷한 환경에 처한 선수들에게 여러모로 희망을 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KBL 서태웅이 되지못한 김동우

연세대는 기량과 상품성을 겸비한 준비된 차세대 예비 스타가 부상으로 인해 프로에서 기대 만큼 활약하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초대 드래프트 출신 김택훈이 그랬다. 연세대 신입생 시절 1학년 신분임에도 실력을 인정받고 많은 출장 시간을 가져갔던 그는 실업 강호 기아자동차와의 일전에서 결승 3점슛을 꽂아넣는 등 배짱과 패기가 돋보이는 젊은 피였다.

플레이 스타일은 다소 투박했지만 1~4번까지 커버 가능한 전천후 수비력에 큰 경기에서도 주눅들지않는 성격 탓에 결정적인 득점을 종종 올렸던 그는 본인만의 매력까지 앞세워 적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드래프트전 아킬레스건 대부분이 끊어진 상태라고 밝혔음에도 삼성에서 3순위로 그를 지명한 이유다.

아쉽게도 부상으로 운동 능력을 잃은 김택훈은 전문 수비수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고 대학시절 현주엽에 이은 넘버2 포워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피지못한 김택훈을 아쉬워하고 있던 찰나 연세대에 또 다른 특급 유망주가 등장한다. 신체조건, 운동신경, 다양한 테크닉까지 모든 면에서 김택훈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불렸다. 신입생 시절 김택훈이 1학년치고 당돌하고 잘하는 선수였다면 김동우는 그냥 입학하자마자 에이스였다. 당연스레 주변의 많은 관심까지 뒤따랐다.

김동우는 포지션은 4번을 주로 맡았지만 공격시에는 내외곽을 오가며 스윙맨의 플레이를 보여주던 장신 포워드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페이스업이 일품이었으며 거리를 가리지않고 쏘는 중거리 슛도 일품이었다. 다소 자세가 높기는 했으나 당시에는 가드들도 많이 쓰지않던 크로스오버 드리블을 구사하고 때로는 볼운반 역할까지 맡을 정도로 볼을 다루는 솜씨 또한 빼어났다.

 

빼어난 기량에 더해 배짱까지 두둑했는데 연세대 신입생 시절 당시 최강의 더블포스트로 불렸던 중앙대 김주성-송영진을 뚫고 성공시킨 투핸드 덩크슛은 지금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소년같은 외모로 인해 '연세대 서태웅'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있었다. 많은 이들은 김동우가 이상민을 잇는 인기스타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러 가지면에서 한팀의 간판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지라 이전 현주엽, 이규섭, 김주성 등이 그랬듯 어느 팀도 김동우를 거르기는 힘들었다. 이를 입증하듯 울산 현대모비스 역시 1순위 지명권을 얻기 무섭게 당연하다는 듯 김동우를 지명했다. 당시 현대모비스는 전신 기아의 색깔을 지우고 싶어했는데 김동우는 새로운 팀컬러를 대표할만한 슈퍼 루키로서 제격인 자원이었다.

KBL을 뒤흔들 뉴스타가 탄생하는 듯 싶었지만 아쉽게도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이었다. 대학시절부터 무릎 통증을 안고 살았는데 거기에 더해 발목 부상까지 겹치며 최대 장점이었던 운동능력을 잃고 만다. 거기에 발바닥 내측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진단이 제대로 되지않아 2년이나 인대가 끊어진 채로 뛰면서 몸상태가 완전히 망가져버린다.

이후 독일까지 건너가 수술을 받았으나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무리를 하는 바람에 무릎 이상까지 찾아온다. 김동우의 프로 생활은 부상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지간한 선수였다면 진작에 은퇴했을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부상과 싸웠다. 덕분에 대학시절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나 장신 슈터 및 전천후 수비수로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낸다.

특히 주무기로 불리던 뱅크슛은 상당한 적중률을 자랑했는데 예상치못한 각도에서도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상대팀 감독들마저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때가 적지않았다. 프로 세계에서 가정은 무의미 할 수밖에 없겠지만 대학때 보여준 모습이 워낙에 임팩트가 컸던지라 지금도 간혹 팬들 사이에서 '건강한 김동우였다면 어땠을까?'라는 말이 종종 흘러나오고 있다.

◆ 김동우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38경기 출전 평균 6.28득점, 1.53리바운드, 0.91어시스트, 0.46스틸

 

부상악몽이 앗아간 174cm 천재가드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척 하기는!’ 과거 개그콘서트를 통해 폭발적 존재감을 과시했던 옥동자 캐릭터의 유행어다. 그런 옥동자의 별명을 이어받은 선수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천재가드로 불리던 옥범준이다. 물론 큰 의미는 없다. 얼굴이 못생겼거나 닮아서도 아니다. 단지 농구계에 드문 옥씨라는 성 때문에 따라붙은 애칭일 뿐이다.

적어도 아마 시절의 옥범준은 옥동자가 대사를 바꿔 ‘농구도 못하는 것들이!’라고 잘난 척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단한 선수였다. 학창시절 내내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으며 이전 천재 가드였던 김승현마저 “대형 가드가 될만한 재목이다”고 인정할 만큼 주변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

어린시절부터 옥범준을 동경했다던 농구 후배 H는 “그 형이 어떤 존재였는지는 딱 한마디로 정리된다. 양동근 선배보다 훨씬 더 잘했던 선배! 동근이형이야 누구나 인정하는 레전드 가드지만 프로와서 더더욱 발전한 부분도 크다. 범준이형같은 경우는 학창시절, 아예 동포지션에서 경쟁 상대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플레이를 보는 내내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농구 퍼포먼스팀 W걸스의 기획자로도 유명한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유소년 클럽 정하윤 코치 또한 "남자부에서는 옥범준 선수를 가장 좋아했다. 남자부 기준으로 신장은 작지만 포인트가드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겸비했던 교과서같은 1번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매우매우 어려운 목표였지만 언젠가는 꼭 여성부 옥범준이 되고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밝혔을정도로 남녀를 떠나 후배들 사이에서도 우상같은 존재였다.

지난해 5월 있었던 <농구人터뷰> 당시에도 필자는 옥범준에게 키에 대한 이야기를 집요하게 물어본바 있다. 그럴 때마다 옥범준은 "아쉽기는 했지만 농구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만큼 큰 변수는 아니었다"고 담담하게 말하고는 했다. 실제로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던 그는 거기에 노력이 더해져 신체조건의 불리함을 훌쩍 뛰어넘을 기량을 갖추고있었다. 자신보다 큰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았고 림도 점프해서 양손으로 잡았을만큼 탄력 또한 좋았다.

옥범준은 작은 키가 무색할 만큼 대학 무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성균관대 시절 이른바 3인방으로 불리던 이한권, 정훈, 진경석 등의 쟁쟁한 선배들을 리드하며 대학리그 우승을 만들어낸 것을 비롯 정통파 1번답게 어시스트상도 여러차례 수상했다. 그중에는 수비상도 있었다. 신장이 작으면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수비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매우 놀라운 수상 기록이다.

옥범준의 농구 인생을 가른 것은 신장이 아닌 부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발목수술이 시작이었다. 재활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냉찜질, 온찜질에 수건 잡아당기고 그런 정도가 고작이었던지라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를 하다 무릎, 어깨 등 다른 곳까지 부상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성균관대에 입학해서는 발목을 다시 다친데 이어 십자인대가 파열되었으며 프로에 와서도 발목인대가 앞쪽 옆쪽 모두 나갈 정도의 큰 부상을 당했다. 앞서 김동우에게 언급한데로 ‘부상없는 옥범준이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질문을 던져보고싶을 정도다. 김동우에 이어 옥범준까지…, 앞날은 쉽게 예측하기 어렵겠으나 큰 부상만 없었다면 프로농구사에 적어도 자신의 이름 석자는 제대로 적어놓았을 선수들임은 분명해보인다.

◆ 옥범준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64경기 출전 평균 1.88득점, 0.76리바운드, 1.27어시스트, 0.41스틸

 

덩크슛에 일가견이 있던 선수들과 은퇴후 더욱 유명해진 박광재

최대어로 불리던 김동우와 옥범준이 부상으로 제대로 날개를 펴지못한 가운데 대부분 1라운드 지명선수들 역시 별다른 임팩트는 남기지 못했다. 모두 최소 100경기 이상은 출전하며 최소한의 프로생활은 이어갔으나 이른바 에이스나 스타급으로 평가받을 만한 선수는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다만 나름대로 각각의 색깔은 보여줬다. 이동준은 장기인 3점슛을 앞세워 슈터형 식스맨으로 팀에 공헌했으며, 석명준은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2년 연속으로 덩크왕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안철호 역시 작은 신장(180cm)에도 덩크슛이 가능한 가드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전병석은 크지않은 키(188cm)임에도 탄력 만큼은 리얼로 인정받았다. 덩크슛 콘테스트에 출전해 고난이도 기술을 선보이는가하면 실제 경기에서도 틈만나면 덩크슛을 시도했다. 거기에 더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큰 서장훈, 자밀 왓킨스 등을 상대로 블록슛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이때금씩 입이 쩍 벌어질만한 장면을 한번씩 보여줬다.

대중들에게 제법 이름이 알려져있는 박광재는 사실 농구보다는 연예계 활동을 통해 유명해진 케이스다. 선수 시절에는 듬직한 체구를 앞세워 이른바 몸빵 센터로 활약했다.

◆ 박종천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72경기 출전 평균 5.46득점, 1.26리바운드, 0.51어시스트, 0.34스틸

◆ 이동준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48경기 출전 평균 2.32득점, 0.54리바운드, 0.51어시스트, 0.29스틸

◆ 석명준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72경기 출전 평균 3.27득점, 1.08리바운드, 0.4어시스트, 0.25스틸

◆ 안철호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01경기 출전 평균 2.43득점, 0.95리바운드, 1.17어시스트, 0.63스틸

◆ 전병석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30경기 출전 평균 2.65득점, 0.92리바운드, 0.51어시스트, 0.35스틸

◆ 박광재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12경기 출전 평균 2.07득점, 1.34리바운드, 0.45어시스트, 0.21스틸

◆ 김두현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42경기 출전 평균 1.74득점, 0.64리바운드, 0.37어시스트, 0.18스틸

 

실속있던 고려대 포워드 오용준과 이현호

 

앞서 언급한데로 당해 드래프트의 최종 승자는 1라운드 10순위 오용준과 2라운드 8순위 이현호 일 수도 있다. 평균 기록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지만 드래프트 동기생중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는 자체만으로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만큼 팀 입장에서도 활용도가 있었기에 오래 뛸 수 있었으며 누적기록 역시 착실하게 쌓아나갔다.

오용준은 정규시즌만 무려 721경기를 뛰었다. 서장훈의 688경기보다 많으며 철인이라 불리던 추승균의 738경기와도 큰 차이가 나지않는다. 주전보다는 식스맨이 더 익숙한 선수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출장경기수라고 할 수 있다. 통산 3,846득점, 1,072리바운드, 649어시스트, 368스틸, 133블록슛으로 상당한 누적기록까지 남겼다. 직접 만들어내는 득점은 약했지만 받아먹는 슛에 능한 슈터였으며 수비 또한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지라 벤치자원으로서 쏠쏠한 역할이 가능했다.

◆ 오용준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721경기 출전 평균 5.33득점, 1.49리바운드, 0.9어시스트, 0.51스틸, 0.18블록슛

'이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 이현호에 대한 현역 시절의 평가다. 2라운드 8순위로 프로무대에 들어온 이후 눈에 띌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래 기간동안 꾸준하게 경기에 나서며 롱런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동기들이 워낙 부진했던 탓에 매우 저조한 성적으로 신인왕을 받기도했는데 낮은 순번을 감안하면 그것대로 대단한 기록으로 남을만 하다.

사실 이현호는 단순한 기록만으로 평가할 선수는 아니다. 언더사이즈 4번이지만 악착같은 근성이 돋보이는 블루워커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넘치는 투쟁심을 바탕으로 골밑에서 치열하게 몸싸움이나 리바운드 쟁탈전을 벌이고 수비시에도 악착같이 덤벼든다. 이른바 궂은 일에 특화된 선수로 지도자들이 좋아할만한 선수다.

◆ 이현호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52경기 출전 평균 3.94득점, 2.49리바운드, 0.76어시스트, 0.66스틸

앞서 언급한데로 박상률은 2부대학 출신이다는 점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던 선수다. 거기에 더해 주로 식스맨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9시즌이나 뛰면서 나름대로의 족적은 남겼다. 2부리그 출신으로는 초대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박용호(청주대)의 케이스도 있기는 하지만 그는 불과 2경기만 뛰었을 뿐이다.

이후 후배인 장동영이 2012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에 뽑히게되나 역시 3경기 출전에 그치고만다. 새삼 박상률의 위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은 신장에 빠르지도 않았지만 특유의 타이밍을 빼앗는 플레이를 통해 경쟁력을 가져갔다. 외곽에서 오픈찬스를 잡으면 꼬박꼬박 넣어줄 정도로 3점슛 능력도 준수했다.

◆ 박상률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270경기 출전 평균4.34득점, 1.15리바운드, 1.74어시스트, 0.69스틸

 

김동우는 지도자 쪽으로 나름 순탄대로를 가고 있다. 인헌고, 명지고 코치를 거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로도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LG에서 조상현 감독과 함께 하고 있다. 옥범준은 농구교실과 스킬트레이너 등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처가가 있는 충북 제천은 물론 경기도 오산과 부천을 오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수원센터까지 오픈 예정에 있다. 거기에 더해 진지한 이미지와 달리 ‘닥터 OBJ’라는 유투브 채널까지 운영중이다.

전병석은 은퇴후 대한민국농구협회 심판, KBL 심판 등을 역임한바 있으며 2부리그의 아이콘같이 되어있는 박상률은 은퇴후 곧바로 목포대학교 농구부를 맡은 것을 비롯 KGC 코치, kt의 코치 겸 전력분석 담당, 군산중학교 코치를 거쳐 현재는 임호중학교 코치로 있다. 박성욱은 마산여고, 분당경영고를 거쳐 부일여중 코치를 맡고 있으며 윤호진은 연세대 농구부 코치, 감독대행 등 단계를 밟아나간 끝에 최근 감독으로 내부승격됐다.

상당수가 농구 지도 혹은 현장 쪽에서 일하고 있는 가운데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있는 이들도 있다. 이현호는 현역 시절의 이미지만 놓고보면 현장에서 선수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코치가 연상된다. 하지만 은퇴후 그는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전자랜드의 코치 제의를 거절하고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준은 KCC 본사 영업사원으로 재직중이며 문종호는 GS샵 쇼핑호스트 시험에 합격한 이후 홈쇼핑 쪽에서 경험을 쌓기도 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이미지편집_김종수 칼럼니스트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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