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은vs조성원, KBL 초창기 최고 슈터는?
기사입력 2023.02.20. 오후 04:46 최종수정 2023.02.20. 오후 04:46
슈터는 국내농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중 하나다. 원조 득점머신 신동파부터 ‘슛도사’ 이충희 그리고 현재 KBL 간판슈터로 떠오른 전성현까지…, 꾸준하게 각 시대를 대표하는 슈터가 배출됐다. 그런가운데 농구대잔치 후반에서 프로농구 초창기는 ‘슈터들의 전성기’로 불린다.
‘사랑의 3점슈터’ 정인교, ‘이동미사일’ 김상식, ‘양갱’ 양경민. ‘당랑슈터’ 김영만,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 ‘스마일슈터’ 김훈, ‘플라잉 피터팬’ 김병철, ‘썬더볼’ 양희승, ‘짐캐리’ 김성철, ‘조쌍’ 조상현, ‘육각슈터’ 조우현 등 멋들어진 별명까지 가지고있는 슈터들이 그야말로 전국시대를 이뤘다.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DB 이상범 전감독, KT 서동철 감독 또한 슈터로 활약했다.
그중에서도 이름값을 따진다면 단연 ‘람보슈터’, '돌고래슈터'로 통하던 문경은(51‧190cm)과 '캥거루 슈터', '몽골리안', '4쿼터의 사나이' 등으로 불린 조성원(51‧180cm)을 꼽을 수 있다. 1971년 동갑내기인 그들은 오랜시간동안 존재감 넘치는 활약을 이어가며 최고 슈터 자리를 놓고 경합을 펼쳤다.
상무에서 ‘쌍포’로 호흡을 맞췄고 각자의 소속팀에서는 토종 주득점원으로 명성을 날렸다. 지금도 역대 최고 슈터를 거론하면 빠지지않고 언급되고 있다. 3점슛하면 가장 먼저 이름이 떠오르는 인물들이다. 그런가운데 둘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있으니 ‘문경은과 조성원중 누가 더 뛰어난 슈터인가?’다.
NBA에서는 시대를 불문하고 역대급 선수를 나열한 다음 줄세우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각 포지션별 최강자는 물론 베스트5 혹은 특정 선수를 거론한 다음 누가 더 잘했는가라는 논쟁이 우리보다 훨씬 활발하다. 시대를 지배하거나 엄청난 커리어를 세운 선수가 있으면 역대 랭킹이 거론되며 거기에서 평가를 받기도 한다.
NBA식으로 평가하면 조성원 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조성원은 KBL 역대 슈터중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KCC 소속으로서 한팀에서 3개의 우승반지를 거머쥐었으며 그 과정에서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차지했다. 어디 그뿐인가. LG로 잠시 둥지를 옮겨서는 공격 농구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했다.
역대 슈터를 통틀어도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차지한 슈터는 조성원이 유일하다. 각각 다른팀 소속으로 시즌 베스트5에 선정된바있으며 시즌 3점슛 왕도 두차례 가져갔다. 조성원은 슈터로서 매우 작은 키였다. 때문에 상대팀에서는 수비시 장신자를 붙여서 괴롭히거나 공격시 미스매치를 공략하려는 시도가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창때 조성원은 현재 전성현이 그렇듯 ‘아무리 수비를 강하게해도 완전히 막는데는 한계가 있는 선수’로 불렸다. 그만큼 꾸준함과 폭발력을 두루 갖춘 선수였기 때문이다. KCC 이조추 시절 그들이 펼치는 속공은 상대팀 입장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보통 속공상황에서 파워풀한 외국인선수나 국내포워드가 함께 뛰게되면 그들 중심으로 속공이 마무리되기 십상이다.
KCC는 달랐다. 조니 맥도웰, 추승균이라는 마무리능력 좋은 선수들이 앞뒤로 뛰어주는 것은 물론 외곽에는 조성원이 버티고 있었다. 발빠른 조성원은 누구보다도 빨리 뛰어 외곽에서 자리를 잡았고 상대의 시선이 포스트인근에 집중될 때 이상민의 패스를 받아서 속공 3점슛을 적중시켰다. 속공을 3점슛으로 마무리짓는 경우가 적은 당시 상황에서 조성원의 그러한 플레이는 가히 충격이었다.
조성원은 자신의 약점이 신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끊임없이 이같은 부분을 커버할 다양한 방법을 궁리했고 엄청난 훈련량을 통해 실행에 옮겼다. 그결과 누구보다도 빠른 점화가 가능한 신속한 스나이퍼가 될 수 있었는데 더욱 무서운 것은 다양한 자세로 저격이 가능했으며 정확도까지 겸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신 슈터는 단순히 3점슛만으로는 버티어내기 힘들다. 제2의 옵션이 있어야 한다. 보통 그정도 키의 선수에게는 수준급 보조리딩, 패싱능력 등이 요구되는데 농구를 늦게 시작한 조성원은 미처 그런 플레이까지는 갖추지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빠른 발을 살린 돌파가 바로 그것이다.
허점이 보인다싶으면 지체없이 포스트로 내달렸는데 개인기로 제치기보다는 스피드를 통해 빈틈을 통과하는 느낌으로 상대 수비진을 뚫어버렸다. 거기에 체공력도 좋은지라 더블클러치 등을 통해 장신자들의 세로수비를 무력화시켰다. 때문에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3점슛만이 아닌 돌파와 외곽을 모두 신경써야했던지라 막아내기가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거기에 더해 정규리그보다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이 더 높은 선수였다는 점도 슈터 조성원의 위대함을 더해주고 있다.
문경은도 만만치않다. 굵직한 타이틀에서는 밀리지만 누적기록에서는 우위에 있다. 문경은은 정규리그 통산 610경기에 출전해 통산 9347득점, 1254리바운드, 1351어시스트, 476스틸로 조성원의 정규리그 통산(432경기) 6402득점, 656리바운드, 929어시스트, 514스틸에 앞선다. 경기수 차이를 논할 수도 있겠으나 프로선수에게는 오래 뛰었다는 자체가 가치를 인정받는 또다른 증거이니만큼 비교시 플러스는 될지언정 마이너스는 되지않는다.
아마시절부터 3점슛 마스터로 유명했던 선수답게 문경은은 시즌 3점슛왕을 무려 6차례나(공동수상 2회 포함) 수상했다. 그외 2회 이상 1위를 차지한 선수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슈터로서의 문경은의 위엄이 느껴진다. 엄청 빠르거나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진을 휘젓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안정적으로 외곽슛을 넣어줄 수 있는 정통파 슈터였다. 거기에 젊은 시절에는 종종 덩크슛을 성공시키며 상대 예봉을 꺾을만큼 탄력 또한 좋았다.
캐치 앤 슈팅으로 유명한 문경은이지만 그는 은근히 다재다능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연세대 시절 포함 상당수 팀에서 그에게 외곽에서 받아먹는 역할에 집중하도록 요구해서 그렇지 전자랜드 등에서 뛸 때처럼 자유롭게 풀어놓게되면 전천후로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수비수의 움직임을 읽고 미리 자리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 미들라인에서의 움직임이좋았는데 직접 풀업점프슛을 쏘거나 외국인선수와의 2대2플레이를 통해 공격을 이끌었다.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이다. 조성원은 리그에서는 손꼽히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작은 신장의 한계로 인한 수비문제를 지적받으며 국가대표로서는 중용되지 못했다. 반면 문경은은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붙박이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국제대회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NBA같은 경우 선수비교시 국가대표 경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않지만 국내에서는 그런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설사 KBL 커리어에서 이를 따지지않더라도 팬들에게 각인되는 이미지 등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사자들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문경은과 조성원은 각자 상대의 손을 들어줬다.
조성원은 “비교가 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문)경은이는 한시대를 온전히 책임진 대한민국 대표 슛쟁이다. 신동파, 이충희, 문경은 등의 계보 이야기도 있지않은가. 나같은 경우 사이즈의 한계가 뚜렷했지만 경은이는 모든 면에서 안정감이 돋보였다. 종종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나는 과대평가된 슈터다. 경은이와 같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경은 또한 “상무에서도 함께 뛰어보고 리그에서도 경쟁해봤지만 (조)성원이는 정말 뛰어난 슈터다. 신장문제가 종종 언급된다고는 하지만 농구는 잘하면 된다. 사이즈가 언급되는 것은 농구에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인데 성원이 정도급의 선수는 진작에 그걸 뛰어넘어버렸다.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슛을 쐈고 발도 빨랐다. 한창때 성원이는 정말 다른 세상에 있는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는 말로 친구이자 라이벌을 극찬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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