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본능’ 이대성, 보이지 않는 에이스로 거듭날까?
기사입력 2022.10.20. 오후 02:37 최종수정 2022.10.20. 오후 02:37
농구 만화 <슬램덩크> 후반부에서 펼쳐진 채치수와 신현철의 대결은 지금도 많은 팬들에게 명장면으로 꼽힌다. 주인공과 같은 팀의 주장 채치수는 도내 최고 센터중 한명이다. 압도적 빅맨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동포지션에서 일대일로 붙어서 누구에게도 쉽게 밀리지않았다. 그런 채치수였지만 전국대회에서는 큰 좌절을 맛본다. 전국 최강 산왕공고의 신현철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경기중 스스로 멘탈붕괴 상황까지 찾아온다.
센터는 한팀의 기둥이다. 그런 채치수가 흔들리자 북산이라는 팀 역시 함께 삐그덕거린다. 하지만 라이벌 변덕규 등의 조언에 힘입어 채치수는 경기중 각성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없던 실력이 뿜어져 나온 것이 아니다. 혼자 신현철을 상대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동료들과 함께 팀플레이로 산왕공고에 맞섰고 다시금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다’는 마음의 외침을 내뱉으며 동료들을 감싸고 걸어가는 채치수의 모습에서 농구가 왜 팀스포츠인지가 느껴진다.
농구에서 주득점원, 에이스의 존재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핵심선수가 중심을 잡아줄 때 그 팀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에이스가 있어도 팀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자신도 빛나고 팀도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결과물이겠으나 하나만 택하라면 팀승리가 먼저인게 맞다. 본인이 덜 부각되도 팀 성적만 좋다면 언젠가는 인정받게 된다.
때문에 최고의 에이스로 불리던 선수들도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이 해결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고 더 컨디션이 좋거나 혹은 일부러 드러낸 빈틈을 찌를 수 있는 선수에게 중요한 슛을 양보하기 한다.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그랬다. 잘알려져있다시피 조던은 뛰어난 리더였다. 마냥 강성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상황에 따라서는 어르고 달래면서 동료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데도 능했다.
현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은 당시 시카고 불스에서 식스맨으로 뛰었는데 조던의 강압적 훈련방식에 항의하다가 주먹 다툼까지 벌인 적이 있다. 하지만 둘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서로를 믿어주며 큰일을 만들어냈다. 유타 재즈와의 1997년 NBA 파이널 6차전이 대표적 예다. 86대 86으로 팽팽한 승부를 이어가던 경기종료 28초전 작전타임이 불렸고 언제나처럼 필 잭슨 감독은 조던에게 마지막 공격을 맡긴다. 그때 커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을테니까 나에게 패스를 줘”라고 의견을 얘기한다.
여러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던의 자존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당시 조던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리그 최고 에이스였고 커는 불스의 식스맨중 한명으로 입지 자체가 비교가 되지않았다. 어찌보면 조던이 무시해도 그만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조던은 냉정했다. 슛만큼은 정확한 커가 상대 수비의 빈틈을 노리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했고 이를 받아들였다. 예상처럼 유타 수비는 당연스레 조던에게 쏠렸고 이에 외곽에서 기다리고있던 커의 손에 패스가 날아든다. 커는 지체하지 않았다. 자신감있게 슛을 쏴서 빅샷을 성공시킨다.
올시즌 한국가스공사로 둥지를 옮긴 이대성(32‧193cm)은 KBL에서 에이스 본능이 가장 끓어넘치는 선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어느 정도 수준의 에이스인가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만큼은 두경민, 이관희 등과 함께 역대급이다. 어쩌면 놀라울 정도로 높은 ‘에고’가 그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대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호불호’다. 열성 팬도 많지만 안티 팬도 많고 플레이 스타일 등에 대해서도 선호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준수한 운동능력과 체력을 앞세운 왕성한 활동량이다. 시야, 완급조절, 패싱능력 등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경기내내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공격횟수와 압박수비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플레이 스타일만 놓고 봤을 때는 2~3번이 어울린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대성은 1번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스스로 ‘나의 포지션은 포인트가드 하나뿐이다’고 공언할 정도로 본인이 모든 것을 주도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즐긴다. 많은 공소유를 통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타입이다.
때문에 이대성의 농구는 이른바 ‘주도’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으며 선수생활 내내 주변의 평가와 본인의 신념 속에서 싸움을 벌여오고 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 다루기 힘든 선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중 하나인데, 반면 그런 희소성있는 캐릭터 때문에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올시즌은 이대성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 우승후보중 하나인 한국가스공사에서의 첫 시즌이기 때문으로 김낙현이 군입대로 인해 떠나있는 상태서 주축으로 서게 될 기회다. 전신 전자랜드까지 포함해 무관에 그치고있는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면 이대성이 자주 언급하는 ‘증명’이라는 부분에도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치른 두경기에서 팀은 이대성의 활약과 다소 엇박자를 보였다. 전주 KCC와의 개막전에서 33분 59초 동안 25득점, 4스틸, 3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맹활약했지만 팀은 패했다. 반면 DB전에서는 5득점, 2리바운드, 1스틸에 그쳤으나 팀은 승리했다. KCC전에서는 동료들이 터지지 않는 가운데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강했으나 DB전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조연 역할도 마다하지않는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전형적인 포인트가드 SJ 벨란겔에게 볼소유의 상당 부분을 양보했고 동료들의 컨디션이 좋자 무리해서 득점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수비 등 궂은 일에서 힘을 냈다. 유도훈 감독 역시 이를 알고 있던지라 경기후 인터뷰에서 “이대성이 영리하게 플레이해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궁극적인 에이스의 목표는 승리와 우승이다. 만약 이대성이 꾸준하게 DB전처럼 플레이해준다면 한국가스공사의 조직력은 더욱 탄탄해질 것이 분명하다. 주인공 본능 충만한 이대성이 보이지않는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김경태 기자, 유용우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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