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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트윈 타워'였는데…, 신산의 악수(惡手)

농구

by 김종수(바람날개) 2023. 3. 3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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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트윈 타워'였는데…, 신산의 악수(惡手)

기사입력 2023.03.29. 오전 11:31 최종수정 2023.03.29. 오전 11:31

트윈 타워, 강팀 도약의 유리한 조건⑨

프로농구 초창기 최고 명장을 꼽으라면 단연 신선우(67‧188cm) KCC 전감독을 들수있다. '이조추(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트리오에 듬직한 외국인선수로 구성된 포스트를 앞세워 현대(현 KCC) 왕조를 만들어냈는데 그 과정에서 놀라운 지도력을 선보이며 지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시즌, 경기별로 미리 전체를 계산해 끌고간다는 의미에서 신산(神算)'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로 매사에 치밀한 행보를 보여왔다.

선수 시절 영리한 플레이를 통해 '포인트 센터'로 불렸던 그 명성 그대로였다. 속공 상황에서 한두번 패스로 바로 득점을 성공시키거나 상대 수비가 포스트에 신경이 쏠려있을때 허를 찌르는 3점슛 마무리 패턴은 신선우표 농구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선수가 좋았던 탓도 있지만 각자의 능력치를 잘 뽑아내고 조화를 시킨 부분은 분명 신감독의 공이라 할수 있다.

사실 신감독은 있는 전력만 잘 유지했어도 전성기를 좀더 오래가져갔을 공산이 크다. 투철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토탈 농구’등 기존 스타일을 확 뒤집는 변화를 종종 시도했다.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면 KCC는 최소 1~2번의 우승을 더 추가했을 것이다는 평가다. 아쉽게도 결과는 썩 좋지못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트윈타워’다.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해군 제독’ 데이비드 로빈슨(57‧216cm)과 '빅 펀더멘털' 팀 던컨(46‧211cm)의 더블포스트를 앞세워 NBA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전세계적으로 높이 농구에 대한 관심의 불길이 거세졌다. 강력한 빅맨 둘을 골밑에 박아놓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국내 지도자들도 많았다.

변신왕 신감독은 놀랍고 부러운 것을 떠나 그같은 전략을 직접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당시 현대에는 걸출한 토종 빅맨이 없었다. 외국인선수 2명을 동시에 쓸 수 있었던 시대인지라 오로지 그들에게 골밑을 맡겼다. 일단 파워포워드 '탱크' 조니 맥도웰(52‧194cm)은 고정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장단신에 걸쳐 신장 제한선이 있던 상황에서 맥도웰 정도의 키로 그만큼 활약해줄 선수는 찾기 힘들었다. 맥도웰이 있었기에 현대는 외국인선수 둘을 오롯이 포스트에 세워놓고 경기를 풀어가는게 가능했다. 크지않은 신장에 기술적으로 별반 대단할것도 없었지만 탄탄한 웨이트에서 나오는 파워와 몸싸움 능력은 최고 무기였다.

자신보다 한참 큰 선수도 힘으로 밀치고 들어가 우겨넣는 플레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맥도웰의 그러한 플레이로 인해 각 구단 관계자들은 '어떤 유형의 외국인 선수가 국내 무대에서 더 잘 통하는가'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어쨌거나 이조추 트리오에 더해 언더사이즈 빅맨 맥도웰까지 있었기에 센터를 고르는 폭을 상대적으로 더 넓게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직전 시즌 팀 우승에 기여한 외국인센터 재키 존스(55‧202cm)는 걸어들어온 복덩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첫 우승 당시 활약했던 제이 웹은 안정적인 골밑 플레이를 펼치는 건실한 센터였지만 신감독은 스피드, 슛거리 등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때문에 트랜지션 농구에 강점을 가진 외국인선수에 대한 갈증을 컸는데 그런 상황에서 2라운드 1순위로 존스를 건지는 대박을 터트린다.

이후 활약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존스는 지명 당시 나이가 만 31세였을 정도로 노장축에 속했지만 KBL무대서의 활약은 어지간한 1라운드 상위지명자 못지않았다. 운동능력은 평범했지만 특유의 영리한 플레이로 인해 리바운드, 블록슛 등에 강점이 있었고 거기에 더해 3점슛을 특기로하는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유형의 빅맨이었다. 거기에 리바운드후 바로 뿌려주는 아웃렛 패스는 현대 속공농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존스와 함께 압도적인 전력이 완성되며 2번째 우승까지 만들어냈지만 신감독은 또 만족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데로 신감독은 샌안토니오의 트윈 타워에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고 현대의 포스트 역시 비슷하게 만들고 싶어했다. 그렇게 데려온 선수가 트라이아웃때부터 눈여겨봤던 파워 센터 로렌조 홀(50‧200cm)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우승 공신 존스를 포기했다는 사실에 있다. 당시 신감독은 선수들 이름값에 비해 좀처럼 성적이 나지않고있던 SK에 존스를 보내고 대신 홀을 데려올 수 있는 권리를 가져오는 픽앤트레이드를 감행한다. 당시 홀은 모든 관계자들이 탐내던 해당년도 트라이아웃 최고의 선수였지만 SK 최인선 감독은 밸런스를 위해서는 존스가 더 맞다고 판단하고 서로간 트레이드를 받아들인다.

2시즌 연속 우승팀 현대가 홀까지 데려가자 타팀들은 ‘올해도 우승팀은 정해진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신감독은 홀과 맥도웰의 ‘트윈 타워’를 통해 힘으로 상대 골밑을 박살낼 계획이었다. 순수하게 힘으로만보면 각팀 4, 5번중 현대만큼 파워가 돋보이는 팀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신감독이 간과한게 있었으니 현대는 제이 웹때도, 존스와 함께 할 때도 이미 더블 포스트의 팀이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두선수다 체격과 힘이 좋아 파워로 상대를 누른다고 ‘트윈 타워’는 아니었던 것이다. 노련한 최감독은 이미 이를 알고있었다. 만약 홀을 현대로 보내지않고 그대로 데려온 다음 전력에 변화를 주지않았다면 현주엽-서장훈-홀이라는 그야말로 엄청난 파워 트리오가 완성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감독은 팀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각 부분에 걸쳐 역할 분담이 잘되는 등 전체적 밸런스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때문에 이름값만 보면 리그 상위권인 현주엽을 슈터 조상현과 바꾸고 홀이 아닌 존스를 서장훈의 파트너로 내세워서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는 트윈 타워를 만들어냈다.

백코트진의 경우 루키 황성인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대인 수비에 강점이 있는 것은 물론 볼운반, 리딩 등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로데릭 하니발을 외국인 가드로 선택했다. 어지간한 외국인 빅맨 못지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던 서장훈이 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황성인, 하니발, 조상현, 존스, 서장훈으로 이어지는 SK 첫 우승멤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SK에서 존스의 역할은 매우 컷다. 서장훈은 외곽슛을 즐기는 슈팅형 센터이기는하지만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지않다. 존스는 내외곽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수비에서의 빈틈을 메워주었고 궂은 일이나 허슬에도 적극적이었다. 조합을 맞추기가 매우 까다로운 서장훈과 좋은 호흡을 보여줬던 흔치않은 외국인 빅맨이었다.

어찌보면 SK ‘트윈 타워’를 완성시켜준 것은 신감독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서장훈과 그정도로 잘맞고 결과까지 좋은 외국인 빅맨은 존스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좀 더 힘있는 트윈 타워에 꽂혀 상대팀의 트윈 타워를 완성시켜주고 말았다. SK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김선형을 전체 2순위로 지명해서 꾸준한 강팀으로의 초석을 다져주었다.

KCC와 현대모비스의 R.F. 바셋 트레이드 과정에서 양동근을 적극추천해 울산 왕조를 탄생시킨 것도 신감독이다. 신감독이 아니었으면 SK와 현대모비스의 미래는 어찌되었을지 모른다.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시간차 트레이드 역시 KBL의 꼼꼼하지 못했던 규정을 재수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이래저래 KBL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신감독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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