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실전, 1순위 부럽지 않은 역대 2순위
기사입력 2023.09.22. 오후 03:46 최종수정 2023.09.22. 오후 03:46
잘뽑은 로터리픽, 非1순위 블루칩 돌아보기②
‘2023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고려대 가드 박무빈(23‧184.4cm)이 전체 2순위로 울산 현대모비스의 지명을 받았다. 같은 학교 포워드 문정현(22‧194.2cm), 연세대 가드 유기상(22‧188cm)과 함께 ‘빅3’로 불리며 1순위를 다투었는데 가드진이 풍부한 수원 KT는 상대적으로 아쉬운 포워드진 보강을 택했고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현대모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박무빈에게 픽을 행사했다.
‘누가 1순위로 뽑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는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셋은 마지막까지 팽팽했다. 각팀이 원하는 선수를 뽑았고 만족한다는 분위기다. 당장 다음 시즌부터 즉시 전력감이라는 얘기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셋 중 누가 프로에서 가장 앞서나갈지는 예측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만큼 각자가 넘치는 재능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2순위는 1순위 바로 다음 순번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한때는 3순위만도 못한 순번으로 평가절하되던 시기도 있었다. 3번 픽의 신화 김승현 등이 대박이 나는 가운데 윤영필, 전형수, 정훈, 옥범준, 노경석, 한희원 등 아쉬운 케이스가 속속 쌓였던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편견이 부서져 갔으니 거기에는 2순위로 흥했던 서울 SK 나이츠의 영향이 크다. 당해 1순위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가는 2순위 대박을 속속 터트리며 타팀들의 많은 부러움을 샀다.
SK는 KBL에서 소문난 2순위 맛집이다. 1998년 원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현주엽)를 가져갔던 SK는 이후 2007년(김태술), 2012년 10월(장재석) 드래프트에서 2번의 1순위를 추가하는데 그친다. 그마저도 장재석같은 경우는 당시 FA였던 박상오를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드래프트 지명권을 넘겨줬던터라 kt로 입단하게 된다.
드래프트 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은 편도 아니다. 하지만 1순위가 아닌 2순위로 시선을 살짝 바꿔보면 SK는 그야말로 역대급 맛집, 대박집이라고 할 수 있다. 1순위 부럽지 않은 혹은 그 이상가는 2순위를 속속 지명하고 키워내며 강호로서 리그를 호령하는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김선형, 최부경, 최준용은 얼핏 1순위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리그에서 잘나가는 선수들인데 모두 SK에서 2순위로 뽑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라이언 킹’ 오세근(36‧199.8cm)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부동의 1순위였다. 좋은 선수들이 다수 있었지만 어느 팀이 1순위를 받아도 오세근 외 지명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시작 전부터 ‘오세근 드래프트’라고 평가받았는데 '1순위 중의 1순위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드래프트가 대단한 이유는 오세근보다 더 대단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은 훗날 레전드가 한명 더 나왔다는 사실이다. 2순위 '플래시 썬' 김선형(35‧187c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SK팬들 사이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디비전 1 출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최진수를 뽑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김선형 지명은 ‘신의 한수’가 됐다.
오세근 다음 순번으로 지명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선형이 좋은 가드임은 분명했다. 넘치는 활동량에 에너지 레벨이 돋보였던 선수인지라 프로에 가서도 즉시 전력감으로 활약할 것이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선형은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는 선수로 KBL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대학 때까지는 주로 2번을 봤는데 프로에서 1번으로 전향해 새로운 야전사령관의 패러다임을 썼다는 평가다.
돌파를 즐기는 플레이 스타일상 1번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돌격대장으로서 빠른 농구의 중심에 섰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시야와 패싱능력도 발전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꽃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운동능력이 돋보인다는 타입인지라 전성기가 짧을 것이다는 혹평도 있었으나 지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MVP,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를 거머쥐며 롱런 아이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창 젊은 시절에도 해내지 못했던 어시스트 1위를 지난 시즌 기록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운동능력은 한창 때에 비해 살짝 떨어졌을지 모르겠으나 손끝 감각은 더욱 뜨거워졌다. 김선형이 드리블을 치며 달려나가기 시작하면 득점 혹은 어시스트중 하나는 만들어진다. 이제는 이상민, 김승현, 양동근 등과 비교될 정도로 역대급 1번으로 올라섰다는 평가다.
2012년 1월 드래프트 2순위 ‘버팔로’ 최부경 또한 마찬가지다. 끝까지 김시래(1순위)와 경쟁했던 선수답게 최부경 또한 김시래 못지않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역대급 빅맨계보를 잇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특유의 건실한 플레이를 통해 강호 SK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최부경은 감독이나 팀원들이 좋아하는 유형의 선수다. 서장훈의 슈팅, 김주성의 스피드, 이승준의 운동능력 등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은 부족한 듯 보이지만 두루두루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지난 시즌 그는 한물갔다는 혹평을 무색하게 할 만큼 되살아난 모습을 보였다. 수비 등 궂은 일에 적극적인 것은 물론 끊임없는 오프더 볼 무브를 통해 팀내 원투펀치 김선형, 자밀 워니의 어시스트를 잘 받아먹었다.
상대 수비가 온통 둘에게 집중된 사이 예상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와 득점에 성공하는 최부경의 플레이는 가성비 만점이었다. 스팟업 슈터가 아닌 빅맨의 받아먹는 플레이도 충분히 위력적이다는 것을 입증했다. 빅맨 포지션에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가 있으면 해당 팀은 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있는데 최부경 또한 거기에 일조하는 중이다.
2016년 2순위 최준용은 역대급 전천후 포워드로 불린다. 단순히 다재다능한 수준을 넘어 빅맨의 신장(200.2cm)으로 포인트가드 역할까지 어느 정도 가능할 정도다. 역대로 이런 선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런 최준용이 1순위가 아닌 것도 이상할 일이지만 당시로 돌아가보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국가대표 센터 계보를 이을 것으로 주목받았던 이종현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준용의 재능도 대단했지만 그에 더해 스트레치 빅맨으로 잘나가던 강상재 등까지 모두 가려버릴 만큼 이종현에 대한 관심은 압도적이었다. 온통 이종현만을 주목했고 이를 입증하듯 그를 지명한 당시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만세를 부를 정도였다.
그만큼 지금이나 그때나 국가대표급 빅맨의 위력은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 한팀의 역사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서장훈, 김주성, 하승진 등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종현은 부상으로 인해 아마 때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상실했고 현재는 매시즌 힘겹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건강한 이종현이라면 최준용과 함께 엄청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 최준용은 SK 우승에 일조한 후 현재는 KCC로 둥지를 옮긴 상태다. KCC에서 뛰면서 해외 진출을 모색할 예정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박상혁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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