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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날았던 글라이더, 그 위에 에어

농구/NBA

by 멍뭉큐라덕션 2023. 10. 7.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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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날았던 글라이더, 그 위에 에어

기사입력 2023.09.27. 오전 08:01 최종수정 2023.09.27. 오전 08:01

잊혀지지않는 서사, 완벽했던 조던의 스토리⑥

 

조던을 30점대로 막기 위해서는 그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던은 50득점을 올릴 것이다. -론 하퍼-

지나간 일은 금세 지워지기도 하지만 때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흔적이 더 강렬해지는 경우도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60‧198cm)의 경우가 그렇다. 조던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활약했다. 꽤 오래전이다. 당시 조던의 플레이에 열광했던 이들은 최소한 중년의 나이가 되어있다.

하지만 조던을 우상처럼 여기고 역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들 가운데는 당시 그의 경기를 라이브로 보지 않은 10~30대 연령층도 적지 않다. 왜 그럴까? 보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이 지금보고 있는 쟁쟁한 슈퍼스타들보다 조던이 우위에 있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이른바 과거 미화는 보고 겪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반응이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뿌리깊은 승리자의 이미지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과거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현 KIA)가 그랬다.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11회 진출 11회 우승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해태는 9전 전승이다. 선동렬, 이종범 등 특출난 선수가 팀을 이끌기는 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그보다 더 강한 팀도 있었다.

하지만 결승 불패의 해태는 상대팀 입장에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고 반대로 해태 선수들은 ‘이번에도 우리는 지지 않는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던의 시카고 불스 역시 그랬다. 파이널만 올라가면 무조건 이긴다는 인식이 분위기를 휘어 감았고 상대는 붙기도 전부터 심적으로 한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전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조던은 승부가 걸려있으면 잔인할 정도로 상대를 짓밟았다. 이유가 있으면 당연히 전의를 불태웠고, 별다른 이유가 없다 싶으면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상식밖 승부욕의 소유자였다. 본인의 넘치는 패기를 통해 상대의 마음까지도 꺾어버렸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선수들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패배를 모르는 인물’, ‘지지 않는 사나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됐다.

어떤 강자, 강한 팀과 붙어도 ‘결국에는 조던이 이길거야’, ‘애매하면 조던이지’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져 가는 모습이다. 누적기록만 보면 진작에 조던을 뛰어넘은 괴물 ‘킹’ 르브론 제임스(39‧206cm)같은 경우 파이널은 참 많이 올라갔지만 통산 승률이 50%가 채 되지 않는다.

어찌보면 그만큼 많이 올라간 것 자체로 박수를 받을 일이지만 조던과 엮이게 되면 모조리 마이너스가 된다. ‘거봐, 조던은지지 않았잖아. 르브론이 말도 안되는 농구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조던은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서 이길거야’라는 신념이 팬들에게까지 전염됐다. 조던의 경기를 라이브로 보지 않은 팬들에게조차 그는 당연히 이기는 아이콘이 되어있다.

농구를 알아가면서 자연스레 조던에 대한 신격화(?)까지도 같이 배우게 된다. 향후 또 어떤 엄청난 선수가 나오더라도 이러한 이미지를 깨트리지 못하면 아무리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있어도 조던을 뛰어넘기는 힘들 것이다. 예전보다 전략‧전술적으로 더 발전했고 더불어 슈퍼팀도 종종 나오는 상황임을 감안 했을 때 이러한 역대 1위의 이미지는 난공불락이 될 공산이 크다.

배드보이즈라는 강력한 악당들에 맞서 좌절을 거듭하다가 동료들과 함께 성장한 끝에 결국 그들을 뛰어넘고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파이널 불패의 전설 그게 바로 조던이다. 만화로 만들어도 진부하다는 혹평을 받을 수도 있는 스토리지만 그걸 현실로 이뤄냈기에 조던은 신화가 되었고 승리의 대명사로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최고 슈팅가드 대결? 조던은 인정하지 않았다.

매직 존슨(64‧206cm)이 이끄는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첫 우승을 달성한 조던의 파이널 두 번째 상대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였다. 당시 포틀랜드를 이끄는 에이스는 클라이드 드렉슬러(61‧201cm)로 조던과 같은 슈팅가드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조던의 6번 우승에서 유일하게 동포지션 적수와 맞붙은 시리즈다.

198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4순위로 포틀랜드의 지명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드렉슬러가 리그를 대표하는 슈팅가드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빼어난 운동능력에 근성까지 갖추고 있었던 탓에 차기 주전 후보로 거론되기는 했으나 팀의 예상보다도 한층 더 발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루키 시즌 짐 팩슨, 캘빈 냇 등을 받쳐주는 벤치 멤버로 평균 17분 정도를 소화하며 가능성을 보인 이후 2년차 때부터 출전 시간이 대폭 늘어나며 준 주전급으로 활약했다. 3번째 시즌에는 올스타 가드로 올라서며 그를 지명한 구단을 기쁘게 했다. 지명 순위 대비 대박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기대를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구단에서는 딱히 드렉슬러를 대놓고 밀어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출장만 하면 제 몫을 톡톡히 해준 드렉슬러 본인이 알아서 잘 컸다고 할 수 있다. 유달리 드래프트 흑역사가 많은 포틀랜드 입장에서 드렉슬러는 역대급으로 잘 뽑은 픽이라고 보는게 맞다.

드렉슬러를 중심으로 포틀랜드는 점차 우승권 팀으로 전력을 다져갔으며 1989~90, 1991~92 두 시즌에 걸쳐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다. 아쉽게도 당시 동부는 역대급으로 강한 시기였다. 첫번째 파이널에서는 조던도 넘지 못했던 시절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만나 1승 4패로 참패를 당하고 만다. 전력 자체만 놓고보면 충분히 해볼만했지만 배드보이즈 특유의 신경전에 휘말려 분위기를 넘겨준게 패인으로 지적된다.

2번째 우승이 필요했던 조던과 지지난 시즌 준우승의 아픔을 씻어내려는 드렉슬러의 대결은 치열하게 진행됐다. '글라이더'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답게 드렉슬러의 플레이는 우와하고 날렵했다. 특유의 체공력을 활용한 다양한 앨리웁 플레이로 공중전에서 화력시위를 하는가 하면 유려한 스핀무브로 시카고 거친 수비수들을 쉽게쉽게 제쳤다.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오프 더 볼 무브도 워낙 좋아 동료들의 패스를 바로바로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물론 실패한 미스샷을 팁인 공격으로 마무리 지어줬다. 마치 ‘드렉슬러 형이 거기서 왜 나와?’라는 말을 해야될 만큼 의외의 상황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공격을 성공시켰다.

전매특허인 핑거롤은 림을 공략하는데 한치의 기복도 허용하지 않았다, 속공상황에서 빠르게 드리블을 치면서 달려가다가 패스를 줄것 같은 짧은 훼이크 이후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림을 향해 날아들어 더블클러치를 성공시키는 플레이에 조던은 얼음이 된 듯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조던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드렉슬러가 다양한 옵션이 돋보였다면 조던은 선굵은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조금의 틈만 있으면 상당한 확률로 장기인 미드레인지 점퍼를 적중시키거나 한 마리 근육질 흑표범처럼 림을 향해 돌진했다. 포지션 대비 힘이 좋은 것으로 유명했던 선수답게 자신보다 큰 상대들과 몸이 부딪혀도 좀처럼 밀리지 않았다. 외려 빅맨 사이를 뚫고 난이도 높은 돌파를 성공시키며 포틀랜드 수비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포틀랜드를 힘들게 만든 것은 경기 내내 지속되는 시카고의 질식 수비였다. 지긋지긋했던 디트로이트와의 진흙탕 싸움으로 단련되어서였을까. 조던, 피펜 등을 중심으로한 황소군단의 수비는 후반으로 가서도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더블팀을 갔고 쉴새없이 달리면서 손질까지 했다.

그야말로 보는 사람이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다. 포틀랜드가 잘 싸우다가도 막판에 무너져버린 가장 큰 이유중 하나였다. 조던이 미친 플레이어인 이유는 수비에서 그렇게 에너지를 쏟으면서도 공격 또한 경기내내 큰 기복없이 꾸준했다는 부분이다. 드렉슬러는 파이널 평균 24.8득점, 7.8리바운드, 5.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에이스로서 제몫을 해냈다.

하지만 조던은 35.8득점, 4.8리바운드, 6.5어시스트로 더한 기록을 냈고 결국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시카고가 우승을 가져간다. 배드보이즈를 거치면서 단련된 시카고의 근성과 집중력은 절정에 달해있었다. 포틀랜드산 글라이더는 힘차게 날았지만 시카고의 '에어(Air)'는 더 높은 곳에 있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나이키 제공, 문복주 기자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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