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50인데 웹툰 작가 도전합니다
입력2023.12.30. 오후 7:28 기사원문
[50대 웹툰작가 도전기①] 내가 도전하는 이유
어쩌면 제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일지도 모를 웹툰 작가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스스로 제 성장을 독려하면서 비슷한 입장의 동년배들에게 이런 사람도 있으니 같이 힘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기자말>
1975년생에게 내년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듯싶다. 올해까지는 40대라고 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 50대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만으로 몇 살이고, 생일이 아직 안 지났는데…' 등으로 부정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냥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따지는 것 자체가 더 씁쓸하다.
어차피 이제는 진짜 나이를 제대로 먹어버린 기분이다. 겨우 한 살을 더 먹었을 뿐이지만 나이에서 오는 체감도가 확실히 다르기는 하다. 똑같이 중년이라는 단어로 퉁치기에는 40대와 50대는 분명하게 다르지 않겠는가. 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가슴을 서글프게 울렸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서른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오십 즈음, 아니 진짜 50살이 되고 말았다.
이런 특별한 시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많은 예비 50대들 중 굳은 결심을 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까 싶다. 나이를 먹었다고 한숨만 쉬고 있기에는 여전히 가슴에 열정이라는 것이 살아있지 않은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열정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은 다소 부끄럽지만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50이 되어 시작하는 일
지금 안 바뀌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다. 50살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이지만 여전히 '안정'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늘 생활비와의 전쟁을 하고 있고 경제적 자유? 그런 것은 꿈도 못꾼다. 그런 상황에서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내가 새로운 도전을 추천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 어렴풋이 그런 것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잠깐씩 해본 것 같다. 그때도 '에이! 어느 세월에, 이미 늦었어'라고 애써 부정해버렸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10년 동안은 꿈도 안 꿨다. 거기에 아내가 격려와 응원을 통해 다 꺼진 심지에 불을 붙여줬다. "당분간 내가 돈 벌어도 되니까 하고 싶은 것 해 봐. 잘 되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어."
보통은 이 정도 나이에 자식도 어리고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먼저 말할 수 있는 아내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도전을 하고 싶어도 현실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아내의 반대에 접어버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외려 아내는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등을 떠밀어줬다. 인생의 반쪽이 해보라고 용기를 주는데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를 믿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일은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업종이다. 다른 아닌 웹툰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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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50대 그림자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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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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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를 꿈꾼다고 하니까, 그림을 배워봤거나 소싯적에 그림 좀 그렸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전혀 아니다. 초등학교 때 만화를 꽤 좋아하고 연습장에 그려보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중학교 2학년 정도까지만 해도 내가 제법 잘 그린다, 소질이 있다는 착각을 잠깐 가져보기도 했지만, 미술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의 놀랍도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꿈을 접어버렸다.
제대로 배운 친구들과 혼자 낙서하던 나의 차이는 실력이 아닌 수준을 논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친구들처럼 미술 학원을 다닐 형편도 아니었다. 현재는 화가로 있는 사촌 누나가 둘이나 있지만 거기는 우리 집보다 훨씬 경제 사정이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명절날 작은 어머님이 오시면 '그림 그리는데 정말 돈이 꾸준하게 많이 들어간다'며 푸념하기 일쑤였다. 그것을 들을 때마다 미술학원은 내가 다닐 수 없는 곳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받았다.
그 뒤 한참의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 소설책을 내기도 하고 모 잡지에 연재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냥 글이었다. 머릿속으로 벽돌을 쌓듯 나만의 스타일로 글을 쓰는 것을 즐겼지만 그럴수록 그림과는 멀어지기만 했고 이후 단 한번도 그림으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생각을 해? 너 50살이야. 아직도 젊다고 생각해? 한푼이라도 악착같이 벌어도 모자랄 판에 기초조차 없는 사람이 무슨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서. 돈 열심히 벌어서 자식 결혼시킨 다음, 노후에 취미로 하면 모를까? 누군 왕년에 꿈 없던줄 알아. 내가 지금은 기름밥 먹고 있지만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웹툰도 마찬가지야. 웹툰은 기술이 아니야.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해."
한 지인에게 나의 생각을 얘기하자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 보듯 잔소리 세례를 쏟아냈다. 기존에 하던 일이 완전히 하향산업이라서 기술이라도 배워볼까 한다고 하니까 좋은 생각이라며 끄덕거리다가 그 일이 웹툰이라고 했더니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난 무엇이 되었든 전문가가 전업을 목표로 배우는 것은 기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인의 의견은 달랐다.
본인처럼 기계를 다루던지 아님 공사현장에서 즉시 써먹을 무엇인가나 생선이나 육가공 손질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생활 전선에서 쓰이는 것이 아니면 기술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 웹툰 작가를 향해서는 시선이 다를 수도 있겠으나 50살 먹은 아이 아빠가 도전을 하기에는 지극히 비생산적이고 뜬구름잡는 행보라고 단정짓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견 이해는 간다. 지인이 언급한 기술들은 어느 정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만 익혀도 당장 밥벌이가 가능하다. 반면 웹툰은 배우고 능숙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니와 설사 곧잘 한다 해도 누가 써주지 않으면 말 그대로 그림좀 그리는 백수가 될 위험도 크다. 모든 예체능이 다 그렇듯 잘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편차도 너무 심하다.
하지만 아내는 나를 응원했다
해당 지인뿐 아니라 몇몇 이들에게 물어봐도 생각은 다 비슷했다. 업종 자체의 난이도와 불확실성에 더해 나이까지 심각한 마이너스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나를 걱정해서 그랬다고 이해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있는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 다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고 아내와 충분히 상의해서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더는 후회하기 싫었다.
"함께 있으면서 지켜보니까 당신은 창작 활동 쪽과 정말 잘 맞아. 어차피 기존에 하던 일 외에 다른 특별한 기술은 없잖아. 기술 없이 성실함만으로도 일할 수 있는 곳은 충분히 있으니 그전에 다만 1년이라도 최선을 다해봐. 최선을 다했는데도 답이 전혀 안 보인다 싶을 때 돌아서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봐. 적어도 이것을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은 가슴속에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내는 한결같았다. 여전히 소녀같은 외모와 달리 뚝심과 결단력이 강한 사람이다. '남들도 했는데 내 남편이 왜?'라며 나를 다잡아줬다. 덩달아 나도 용기가 생겼다. 주변에서 다 해보라고 해도 집에서 반대하면 쉽지 않다. 나는 완전히 반대 상황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는 웹툰학원 6개월반에 등록을 했고 주 3회씩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오늘 아내가 물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 긴장은 안돼?" 이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혀. 어서 새해가 와서 당장이라도 학원에 가고 싶어." 나의 50대는 도전과 설레임으로 시작되고 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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