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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억분의 1'로 불리던 케인 벨라스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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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C 아시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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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격투기 MMA의 상징을 꼽으라면 여전히 '얼음 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48·러시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단순히 강한 정도만 따진다면 지금은 역대 최강권 후보에 들기 쉽지 않지만, 선구자 등의 개념으로 다가갈 경우 충분히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프로복싱의 무하마드 알리 같은 존재다.
표도르는 헤비급치고 작은 체격이지만 유연한 몸놀림과 스피드, 위기관리 능력이 인상적이었던 선수다. 타격가, 주짓떼로, 레슬러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격파하며 헤비급의 정점에 섰던 한 시대의 제왕이었다. 10여 년간 불패 행진을 펼치던 표도르에게 팬과 관계자들은 '60억분의 1'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케인 벨라스케즈(42·미국)는 그러한 표도르의 뒤를 이어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존재다. 누구와 붙던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며 상대를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던 괴물 같은 포스에 팬들은 열광했고 늘어난 인구수(?)를 감안한 '70억분의 1'이라는 또 다른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드디어 표도르의 왕관을 물려받은 절대 강자가 등장한 것이다.
공포의 압박머신
역대 모든 체급을 통틀어 좋은 체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레슬링을 구사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좋은 성적을 거뒀다. 벨라스케즈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는 동급 최강의 레슬러이자 어지간해서는 지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에너자이저였다. 매서운 타격능력까지 겸비했고, 타격과 그래플링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구사해 상대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표도르가 그랬듯 벨라스케즈는 신장(185cm)은 크지 않았으나 전체적 골격이 매우 뛰어난 장사형 체격의 소유자로 운동능력, 맷집, 체력 등을 앞세워 쉴 새 없이 상대를 압박했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물러서는 법 없이 거칠게 밀어붙이며 결국은 질리게 만들어버린다. 스피드는 표도르에 미치지 못하지만 맷집과 파워는 벨라스케즈가 앞선다는 평가다.
테이크다운에 성공하면 포지션 지키기에 일단 집중하는 대다수 선수와 달리 벨라스케즈는 시종일관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밸런스가 워낙 좋아 공격적으로 나가면서도 반격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으며 여차하면 넘어뜨리기를 반복했다. 좀처럼 상대에게 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돌주먹 파운딩은 과거 표도르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이나 큰 충격을 안겨줬다. 프라이드 시절의 표도르는 파운딩을 견제용으로 활용하던 당시 선수들과 달리 확실하게 탑 포지션을 점유한 상태에서 큰 궤적으로 풀스윙을 퍼부었다. 파운딩을 결정타로 즐겨 사용하지 않던 당시, 혁신적이다는 평가가 쏟아져나왔을 정도다.
반면, 벨라스케즈는 완전히 자세를 잡지 않은 상태에서도 과감하게 파운딩을 날려댔다. 상대가 어떤 위치에 있든 자신이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갔다 싶으면 두 다리를 땅에 굳게 붙인 채 정확하고 호되게 후려갈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넘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가능한 패턴이었는데 때문에 그에게 상위를 빼앗긴 상대 대부분은 피투성이가 됐다.
레슬러의 난적 '시가노'를 무너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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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때 케인 벨라스케즈의 압박은 누구도 견디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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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C 아시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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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즈가 한창 전성기를 달릴 무렵 UFC 헤비급은 그와 '시가노'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40·브라질)가 양분했다. 옥타곤 최고의 복서로 꼽히는 도스 산토스는 거리 조절을 잘하고 무엇보다 극강의 테이크다운 디펜스 능력을 장착했다는 점에서 압박형 그래플러에게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도스 산토스의 그래플링 수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킥을 거의 쓰지 않는 펀처 유형인지라 타이밍 태클을 시도하기 쉽지 않고, 웬만한 클린치는 어렵지 않게 뜯어버릴 만큼 힘도 좋았다. 어지간해서는 넘어지지 않았고 설사 테이크다운을 허용했다 해도 등이 바닥에 닿기 무섭게 바로 일어섰다. 누르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디펜스 능력을 갖춘 타격가였다.
벨라스케즈는 타격과 레슬링 능력을 고르게 장착한 유형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래플링의 비중이 컸다. 강력한 그래플링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타격도 위력을 발휘했다. 레슬링이 먹히지 않으면 스탠딩 능력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도스 산토스처럼 넘어뜨려서 누르기 힘든 타입의 타격가와의 승부는 좋지 않았다.
벨라스케즈의 진정한 위력은 타격과 레슬링이 적절히 조화될 때 발휘됐다. 타격전을 펼칠지 그래플링 공방전을 벌일지에 대한 선택권을 대부분 자신이 쥐고 경기를 풀어나갔다. 아쉽게도 도스 산토스를 맞아서는 최대 무기인 테이크다운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격전을 펼쳐야만 했다.
지난 2011년 11월 'UFC on FOX 1'대회에서 있었던 1차전 당시 벨라스케즈는 레슬링 방어가 좋은 도스 산토스에게 무리해서 테이크다운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 로우킥 등으로 다리를 묶어 놓는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당시 최고의 타격감을 자랑하는 도스 산토스와의 스탠딩 공방전은 여러 면에서 불리해 보였다.
초반 탐색전에서 전광석화 같은 오버핸드 라이트를 허용한 채 벨라스케즈는 그대로 녹다운됐다. 도스 산토스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연이은 파운딩으로 경기를 단숨에 끝냈다. 당시 경기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두 선수 다 역대급 강자로 평가받았지만, 벨라스케즈의 우위 혹은 접전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승부가 갈렸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양강 체제'가 도스 산토스 쪽으로 기울어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012년 12월 30일 'UFC 155'대회서 치러진 2차전에서 벨라스케즈는 리벤지에 성공한다. 역시나 해법은 레슬링이었지만 방식은 그동안과 조금 달랐다.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켜 바닥에 누르는 대신 케이지에 밀어놓고 클린치 싸움을 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도스 산토스는 전·후진 스텝은 좋지만 상대적으로 사이드스텝은 떨어지는 편이다. 료토 마치다, 스티븐 톰슨 등처럼 케이지를 등지고 옆으로 움직이는 기술은 뛰어나지 않다. 벨라스케즈는 바로 이점을 노렸다. 자신의 최대 장점인 체력을 활용해 쉬지 않고 전진 압박을 펼치며 도스 산토스를 케이지에 가둬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클린치와 더티 복싱을 통해 진흙탕 싸움을 펼쳤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싸우는 방식에 익숙한 도스 산토스 입장에서는 근거리에서 치고받는 상황은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의 도스 산토스는 매우 강력한 파이터였지만 벨라스케즈는 그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5라운드 내내 무한의 더티 복싱을 반복하면서도 여간해서 지치지 않았다. 그런 능력을 활용해 공이 울리는 순간까지 도스 산토스를 묶어 놓고 끊임없이 데미지를 줬고 결국 완승한다.
이후 2013년 10월 20일 'UFC 166'에서 치러졌던 두 선수의 마지막 대결(3차전)에서 도스 산토스는 나름대로 대비했지만 벨라스케즈의 무한 압박은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도스 산토스는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벨라스케즈가 진정한 '70억분의 1'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때의 혈전으로 인해 몸에 많은 데미지가 쌓인 벨라스케즈는 이후 부상 등으로 고생하며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 나가지 못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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