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독 농구 코트에서 폭언·폭력이 끊이지 않는 걸까
입력2024.12.07. 오후 3:00 기사원문
상대팀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도발하기도…용병 선수, 낯선 국내 분위기에 문화적 충격까지
최근 프로농구 최대 이슈는 고양 소노 김승기 감독의 사퇴였다. 김 전 감독은 11월10일 서울 SK와의 정규리그 2라운드 원정경기 하프타임에 한 선수를 질책하는 과정에서 폭언과 함께 보드마커 지우개를 던졌다. 지우개가 맞지 않자 재차 젖은 수건을 휘둘러 얼굴을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김 전 감독은 병원진단을 받은 이 선수에게 전화로 폭언을 쏟아내며 일을 더 키우고 말았다. 소속팀 소노는 자체 조사 후 11월20일 KBL에 재정위원회 개최를 요청했고, 같은 날 KBL 클린바스켓센터에도 관련 사항이 접수되어 조사에 들어갔다. 이는 큰 파문으로 확산됐다. 팬들의 분노도 컸다.
결국 김 전 감독은 11월22일 자진 사퇴를 통해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와 별개로 KBL은 폭행 혐의에 대한 조사를 계속 이어갔고, 긴 논의 끝에 김 전 감독에게는 KBL 자격정지 2년, 소노에는 엄중 경고가 내려졌다. 폭행 사건 전까지 김 전 감독은 KBL 최고 사령탑 중 한 명으로 불리며 지도자로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안양 KGC인삼공사(현 정관장)에서 2016~17 시즌 통합우승, 2020~21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명장 대열에 올라섰고, 고양 사령탑으로 옮겨간 후에도 캐롯-데이원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시기에 팀을 잘 추슬러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다. 소노 구단 역시 그의 이러한 지도력을 높이 평가해 초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하면서 탄탄대로였던 지도자 커리어에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말았다.
11월13일 고양소노아레나에서 열린 2024~25 KCC 프로농구 고양 소노와 울산 현대모비스 경기에서 소노 김승기 감독(왼쪽)이 판정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자팀에도 폭력 만연…머리채 휘어잡기도
사실 농구계의 폭언·폭력은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학원 스포츠부터 실업, 프로까지 비일비재했다. 실업 시절 어떤 팀의 경우 너무 경기력이 좋아 다른 팀들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에 상대팀 선배들이 일부러 거칠게 도발하고 시비를 걸어 주먹을 휘두르는 전략을 선택하기도 했다.
대학 무대를 평정했던 모 선수가 실업 선배들의 폭력성 수비에 큰 부상을 입고 커리어 내내 고생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련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와중에 일어난지라 지금까지도 영상으로 박제되어 각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있다. 폭력의 정당화까지는 아니지만 암암리에 묵인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실업 시절 명장으로 소문났던 지도자 중 상당수는 폭력·폭언을 앞세워 선수단을 휘어잡았다. '연습 때 잘 굴려야 실제 경기에서 잘 굴러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구태여 남자 선수까지 갈 것도 없다. 여자 선수단에서도 폭력이 만연했다. 손으로 머리칼을 칭칭 감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는가 하면 줄넘기를 글러브처럼 주먹에 감고 휘두르기도 했다. 엎드려뻗쳐 한 상태에서 구둣발로 손등을 밟기도 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일이지만 당시에는 만연했다. 폭력·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선수생활을 그만둔 이도 적지 않았으며, 은퇴 후에도 트라우마로 고생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성적만 잘 나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 사제지간의 '사랑의 매'로 포장되기 일쑤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프로농구 초창기까지 이어졌다. 프로화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실업 출신 지도자들이 그대로 프로팀을 맡는 경우도 적지 않아 폭력과 기합 등이 여전히 존재했다. 이를 지켜본 당시 외국인 선수들은 자신들 상식으로 상상도 못 할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더욱이 상당 부분 당연시되는 분위기에 문화 충격까지 받았다는 후문이다.
K 선수의 경우 팬들에게 화끈한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기회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덩크슛을 시도했는데, 한번은 겉멋이 들었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따귀를 맞았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폭력을 싫어하고 이해를 통한 소통을 선호하는 선수·감독도 많다. 하지만 반대 스타일에 대해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는 걸 느껴"
그렇다면 해외의 사례는 어떨까? 아르헨티나 혼혈선수로 유명했던 전 프로농구 선수 출신 김민수 계성중 코치(42)는 경희대 입학 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농구를 했다. 아르헨티나는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폭력·기합 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다만 폭언 같은 경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운동을 가르치다 보면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는 무조건 나온다. 그 과정에서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다. 아르헨티나 감독·코치님 중에서도 목소리 큰 분은 많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제자나 선수들에게는 어떻게 할까. 거기에 대해서는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서로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다. 심한 경우에는 감독과 선수가 멱살 잡고 서로 싸우는 경우도 봤다. 정 안 맞는다 싶으면 선수는 경기에 나설 수 없다. 대신 결과에 따른 책임은 감독이 진다"고 답했다.
실업과 프로 시절을 모두 경험한 전 프로농구 선수 출신 조성훈씨(51)는 "은퇴 후 꾸준하게 다양한 현장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는 사실이다. 폭력·기합 등은 전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시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말로 달라진 농구 문화를 설명했다.
다만 "폭력·기합 등은 당연히 안 되겠지만 폭언에 대해서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욕을 하고 인격모독을 하면 당연히 폭언이 맞다. 하지만 호통을 조금만 쳐도 다음 날 학부모에게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운동을 하다 보면 지도자나 선수나 늘 차분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는 서로가 이해하고 맞춰나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많은 이의 관심과 노력으로 농구계를 비롯한 스포츠계의 폭력·폭언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도자만 바뀌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선수들도 자발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변화를 위해 힘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
김종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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