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쉽게 끝나버린 1980년대 휴스턴 트윈타워

농구/NBA

by 멍뭉큐라덕션 2023. 3. 9. 22:40

본문

아쉽게 끝나버린 1980년대 휴스턴 트윈타워

기사입력 2023.03.08. 오후 01:43 최종수정 2023.03.08. 오후 01:43

트윈 타워, 강팀 도약의 유리한 조건①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트랜드에 변화가 온다해도 농구가 높이의 스포츠인 것 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림의 높이는 정해져 있고 거기에 공을 넣고 막아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가까이 손을 가져갈 수 있는 선수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작은 선수가 득점을 성공시키기 위해 여러번의 훼이크와 기술을 쓸 때 큰 선수는 한 두번의 움직임만으로도 쉽게 결과를 내기도 한다. 때론 알면서도 막아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강력한 센터가 승부에 끼치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단순히 골밑높이에서 상대팀을 압도하는 것은 물론 동료들의 플레이까지 원활하게 만들며 팀 전체의 경기력을 끌어올린다. 거기에 해당 센터에 버금가는 또 다른 센터 혹은 파워포워드가 함께 경기에 뛴다면 그 위력은 동료들에게는 든든, 상대팀에게는 공포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농구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그러한 두명의 빅맨 조합을 '트윈 타워(twin tower)'라고 부르는 모습이다.

더블 포스트 시스템이 가지는 수많은 장점은 누구나 알고있지만 그렇게 팀의 중심을 짜기는 쉽지않다. 예나 지금이나 수준급 빅맨은 희소자원인데 하물며 둘이나 보유해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1990년대 NBA는 센터전성시대였지만 4대센터를 비롯한 수준급 빅맨들은 대부분 여러팀에 뿔뿔히 흩어져있었다. 그 많은 빅맨 홍수 속에서도 팬들의 기억 속에 확실히 남는 ‘트윈타워’가 떠오르지않는 이유다.

‘트윈타워’ 구성이 어려운 배경에는 샐러리캡 등의 영향도 크다. 주전급 센터나 파워포워드는 연봉부터 만만치않다. 그런 선수를 보유한 팀이 거기에 더해 또 그만한 수준의 동포지션 선수를 데려오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강력한 트윈타워를 구축한 팀을 보면 신인 드래프트에서의 행운 등이 겹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윈 타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조합은 역시 1980년대 휴스턴 로키츠의 상징이었던 랄프 샘슨(62‧224cm)과 하킴 올라주원(60‧213cm)이다. 휴스턴은 1983년, 1984년에 걸쳐 전체 1순위를 지명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었고 포지션 중복에 상관없이 당해 최고의 센터 유망주를 연달아 선택한다. 포지션 중복이라는 이유로 마이클 조던을 거르고 샘 보위를 지명했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흑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드래프트는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해당 순번에서 가장 가치있다고 판단되는 선수를 뽑는게 최고다. 그런 점에서 당시 휴스턴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트윈 타워 구성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에는 서로간의 플레이 궁합 여부도 있다. 어렵게 빅맨 둘을 포스트에 세웠다해도 동선이 자꾸 겹치고 서로가 서로를 살려주지 못하게 되면 시너지는커녕 공존조차 어렵게 된다. 둘다 포스트 위주로 플레이하는 만큼 최소한의 기동성과 패싱센스 그리고 슛 장착은 필수다. 아무리 힘과 높이가 좋아도 느리고 단순한 유형의 센터 조합으로는 골밑에서의 빡빡함만 유발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샘슨과 올라주원 조합은 상당히 이상적이었다. 둘다 장신이었음에도 신장에 걸맞지않는 기동성에 다양한 기술까지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나이까지 비슷한지라 많은 이들은 향후 휴스턴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최근 NBA팬들 사이에서는 빅터 웸반야마(19‧223.5cm)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있다. 아직 NBA에 데뷔도 하지않은 유망주일뿐이지만 큰 키와 윙스팬을 갖춘 손꼽히는 장신이면서도 내외곽을 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플레이하는게 가능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신장 대비 재주가 많은 것이 아닌 진짜로 스윙맨처럼 플레이를 즐긴다.

과거부터 NBA를 봤던 클래식 팬들은 웸반야마에게서 샘슨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샘슨 또한 신체조건만 놓고봤을 때는 높이만 앞세우는 선수였을 것 같지만 현재의 웸반야마를 보듯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재능이 탁월한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재주꾼으로서의 면모만 보면 올라주원보다 더 패가 많았다.

샘슨이 워낙 토탈패키지라 그렇지 올라주원 역시 전천후 빅맨으로 분류할만한 선수다. 최고 수준의 풋워크를 자랑했던 선수답게 포스트업, 페이스업에 모두 능했으며 안정적인 슈팅능력을 바탕으로 미들, 외곽을 가리지않고 정확도 높은 슛을 꽂아넣었다. 특히 좌우 가리지않는 부드러운 스핀무브와 이어지는 다양한 동작을 통해 상대를 벗겨내는 플레이는 당대 최고로 꼽혔다.

자신보다 작은 빅맨은 운동능력과 사이즈를 앞세워 압살하고 크고 힘좋은 상대와 붙으면 스윙맨을 연상케하는 드리블과 다양한 기술로 농락했다. 여러선수들이 골밑에 한꺼번에 몰려있는 상황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게 속이고 또 속이며 수비수를 우수수 떨어뜨렸다. ‘그는 센터가 아니다. 스몰포워드다’는 마이클 조던의 우스갯소리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다.

아쉽게도 당시 휴스턴은 역사에 남을 최고의 트윈타워를 제대로 쓰지못했다. 올라주원이 센터를 맡고 샘슨이 4~5번을 오가면서 호흡을 맞췄는데 상대를 가리지않고 높이에서부터 박살을 냈다. 올라주원의 2년차 시즌때는 51승 31패로 당시 팀 역사상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휴스턴은 그렇게 상승세를 타며 당시 서부 최강자였던 LA레이커스를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물리치고 최종 파이널 무대에 진출한다. 아쉽게도 래리 버드가 이끌던 보스턴 셀틱스에 완패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지만 많은 이들은 레이커스와 셀틱스를 이을 차세대 주자는 휴스턴이 될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그만큼 휴스턴의 젊은 트윈 타워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역사상 최강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를 휴스턴 트윈 타워는 1987~88시즌 샘슨의 트레이드를 끝으로 해체되고 만다. 당시 감독인 빌 피치는 샘슨의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때문인지 서로간 사이도 나빴다. 피치 감독은 샘슨의 트레이드를 통해 새로운 팀컬러를 계획했겠으나 잘 알려진 것처럼 이후 결과는 새드 앤딩이었다.

휴스턴을 떠난 샘슨은 이후 부상 등이 겹치며 기량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여러 팀을 거치며 그저그런 저니맨으로 커리어를 마치게 된다. 당시 트레이드를 주도했던 피치 감독 또한 바로 그해에 경질당한다. 올라주원같은 경우 마이클 조던의 1차은퇴후 공백기간을 틈타 2시즌 연속우승의 업적을 달성하며 NBA 최고 센터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슨과 꾸준하게 호흡을 맞췄다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졌을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여전히 많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AP/연합뉴스, NBA 미디어센트럴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oetet@naver.com

Copyright ⓒ 점프볼.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글 더보기